사랑으로 만난 부부지만, 살면서 생겨난 견해 차이로 마음 한 쪽이 저릿할 때. 서로를 이해해주는 것 같지 않아 앙금이 깊어질 때 한국교회의 역사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동정부부’를 떠올려보자.
새로 단장한 수원교구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173-2, 전담 권일수 신부) 입구 어귀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동정부부상’이 놓여있다. 작품은 이숙자 수녀(세실리아·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만든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순교부부’다.
조 베드로와 권 데레사는 현재 시복시성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명단에 포함된 순교자들이다. 양반이자 평신도 지도자로서 평생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온 우리의 신앙선조다. 동정부부상 옆에는 조 베드로의 아내이자 한국교회 창설 주역 권일신의 딸, 권 데레사의 신앙고백도 절절히 새겨져 있다.
“천주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데 어떻게 그분을 배반하라고 그러십니까? 이 세상에서도 누구든지 부모를 배반하는 사람은 용서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은 더구나 배반해서는 아니 됩니다.”
미사보를 쓴 채 왼손에는 묵주를, 오른손에는 나뭇가지를 든 권 데레사의 얼굴은 햇빛을 받아 쨍하게 빛난다. 부부는 서로 마주보지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같은 곳을 지향하며 같은 곳에 눈을 둔다. 동정부부의 모습이 일깨워주는 커다란 가르침이다.
양근성지에는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순교부부’상 외에도 이숙자 수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십자가의 길, 칼 모양을 나타내는 조형물 ‘순교의 큰 칼’ 등도 함께 전시돼 있다.
특히 ‘순교의 큰 칼’ 옆에는 ‘순교의 큰 칼 아래, 자기 비움의 길을 가신 님들 향해 승리의 빨마가지 흔들며 기립니다. 2010년 예수성심 성월에’라고 적힌 만든 이의 기원도 함께 새겨져 있다.
양근성지에 작품을 전시한 이숙자 수녀는 2007년 초대전 ‘십자가의 길’, 2008년 ‘함께한 십자가의 길’을 여는 등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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