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개신교회에 다녔어요. 그러다 어느 날 풍채 좋고 잘생긴 천주교 신부가 마을에 왔어요. 너무 멋져 보였죠. 17살에 입회해 처음엔 명동성당 옆 천막에서 트렁크 가방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어 다시 나가버릴까도 생각했어요.“(이팔종 수사)
“아버지가 수도원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석 달 정도 기술이나 배우고 오라’고 보낸 거였어요. 그러나 첫날 끝기도 후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제 마음은 하느님께로 완전히 돌아섰어요. 하느님이 나를 양말 뒤집듯 뒤집은 거죠.”(방학길 신부)
반세기를 한결같이 주님 품 안에서 살았다. 올해로 첫 서원 후 50년, 금경축을 맞았다. 두 사람의 할아버지 수도자가 기자들 앞에 섰다. 바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방학길 신부와 이팔종 수사다. 수도회는 30일 서울 성북동 ‘복자사랑 피정의 집’에서 이들의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금경축 미사를 봉헌한다.
두 수도자는 1953년 설립된 ‘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배출한 첫 번째 금경축 수사다. 무엇보다 수도회 및 한국교회 역사의 산증인임에 틀림없다. 이 때문에 현직 수도자들에게도 이들은 존재 자체로서 힘이 되어 준다. 사실 수도자로서 50년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다. 이들의 일상 자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 수도자에게도 올바른 성소의 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숙제였다. 방 신부는 6번이나 짐을 쌌다 풀었던 경험이 있다.
“수도원은 자원해서 오는 거죠. 스스로 선택했으니 포기도 스스로 하면 됩니다. 밖에서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보지만 오히려 인간의 약점이 가장 많은 곳이 수도원입니다. 매일매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속상할 때마다 기도를 하면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죠.”
마지막으로 두 수도자는 젊은 수도자들을 위한 제언을 남겼다.
“수도자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둘째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지요.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자신과 싸울 일도 없거든요. 세 번째는 수도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이팔종 수사는 종신서원 직후 10년간 목공에 종사하며 인천 고잔성당, 서울 금호동성당, 제주 서귀포 면형의 집 등을 지었고, 이후 수도회 제주분원장, 면형의 집 원장, 성 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관리과장 등으로 활동했다. 방학길 신부는 1976년 사제품을 받은 후 서울 가회동·전농동·세종로본당에서 사목했다. 1981년부터 13년간 새남터성당 건립과 성지 조성에 힘썼으며, 수도회 5·6대 총원장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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