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원본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밀려오는 그리움과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번역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서 아버지의 뜻을 이을 수 있었다는데 나름의 자부심과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영문과)가 펄벅의 장현소설「살아있는 갈대」(전2권, 동문사)를 아버지 고 장왕록(토마스 아퀴나스) 교수와의 공동번역으로 새로 펴냈다.
63년, 펄벅 여사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을 번역, 출간한 뒤 개역작업을 하던 장왕록 교수가 사고로 타계하자 장영희 교수가 아버지의 작업을 이어받아 완성해 낸 것. 96년 상권을 출간하자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중고생들의 필독서로 추천됐으나 출판사측 사정으로 이제서야 하권까지 마저 빛을 보게 됐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미국문학 작품의 번역, 교과서 저술작업을 같이한 경우는 있었지만 공역작품은 처음입니다. 표현을 현대화하고 어색한 부분을 약간 수정한 것에 불과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번역자의 양심과 성의」잊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장영희 교수와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관계는 부녀지간을 넘어 선후배, 공저자, 학문의 동반자로서 매우 각별했다. 장애인인 장교수가 서강대에 입학해 영문학자의 길을 드어설 수 있었던 것. 늘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 모두 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이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존경하는 대선배 고 장왕록 박사의 영전에 삼가 바친다』고 말하는 장교수는 『돌아오는 안식년에 아버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미국문학사」를 마무리하고 훗날 아버지의 호를 딴 「우보번역연구회」를 만들어 더좋은 번역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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