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수도제도의 입법자 또는 수도생활의 사부(師父)라 불리는 성 베네딕도(480-547)는 시대가 요청했던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모범적 삶을 살았으며 영적으로 절도와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수도 규칙서를 썼다. 그의 규칙서는 당시와 중세기의 수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 및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크게 기여하였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우선 성인의 생애와 영성사 안에서의 역할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베네딕도의 삶과 행적에 관해 전해주는 역사적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대한 출전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쓴 「대화집」제 2권 뿐이다. 이 책은 베네딕도 사후 50년이 채 안되던 539-544년 사이에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근거하여 쓰여진 것이다. 저자는 베네딕도를 하느님의 사람의 전형, 백성을 위해 그리고 수도회를 위해 크게 기여하며 봉사한 카리스마적 인물로 묘사한다.
베네딕도는 480년경에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노르티아(Norcia)의 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년기에 수사학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로마에 갔다. 그는 그 도시에서 사회적 퇴폐와 동료들의 방종을 목격하면서 환멸을 느껴 그가 추구하던 학문에 회의를 갖게 되었으며 한편 영적 생활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강하게 감지하게 되면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로마에서 70여㎞ 지점에 있는 수비아코(Subiaco)라는 한적한 산골로 드어가 한 동굴에서 은거하며 3년간 독수생활을 하였다. 이곳은 영성의 대가가 될 그가 회심의 초기를 지낸 뜻깊은 연고지이다. 그곳은 기도와 묵상, 극기 중에 성령께로부터 양성되던 수련의 장이었으며 하느님과의 진정한 친교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곳이었다. 한편 어느 때보다 맹렬한 유혹과 투쟁하면서 시련의 수행 여정기간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덕망이 점차 널리 알려져 많은이들이 지도를 받으러 왔다. 어느날 비코바로(Vicovaro)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들이 찾아와 세상을 떠난 신임 원장을 이어 후임원장을 맡아주길 간청하였다. 그들의 간곡한 청원을 받아들여 원장으로 부임한 베네딕도는 규율이 문란하고 무질서한 그 수도원의 제도를 철저히 개혁하고자 하였다.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그에게 불만을 품은 수사들은 그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다. 황당한 사건을 겪은 후, 그는 동굴로 다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구도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위해 수비아코 산 주변에 12개의 수도원을 세워 각 공동체에 12명씩 분산 배정하여 생활하게 했으며 그는 중앙 수도원에서 수련자들을 지도하였다. 이것은 공동체적 행동양식에 잘 맞는 공생(共生) 수도생활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지역 사제 플로렌시오와의 갈등으로 수비아코를 떠나야 했다. 평신도 신분의 베네딕도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도를 받는 데에 대한 그의 질투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529년경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약 140㎞ 떨어져 있는 카씨노 지방의 웅장한 산악 높은 지대에 정착하였다. 거기에 세례자 요한성당, 성 마르티노 성당과 함께 새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곳이 오늘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본부가 있으며 역사적 명소가 된 몬테카시노(Montecassino)이다. 이 수도원에 점차 수도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베네딕도는 생활의 지침이 될 규칙의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수도생활의 규범이 될 역사적인 규칙서를 작성하였다. 이 규칙은 공동생활을 명백히 규정하고 순명을 최고의 덕으로 삼으며 재물의 사유(私有)를 금지하고 평생 한 수도원에 머무를 것(定住)과 특히 전례를 중요시하고 성교회의 가르침에 성실히 따를 것을 명하고 있다.
그는 몬테 카시노에 정착한 후엔 테라치나(Teraxina)에 수도원 설립의 임무를 맡은 수도자들을 돕기 위한 단 한번의 방문 외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수도원 근처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던 여동생 스콜라스티카와 그 동료들에게 수도규율을 만들어 주었으며 영적 및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스콜라스티카가 죽은 지 얼마 안되는 547년에 세상을 떠났다.
2.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1)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원 제도의 시조 또는 입법자로 불린다. 그것은 그가 수도생활을 처음 고안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동방에서 시작되어 서방에 들어온 수도생활을 뿌리 내리게 한 분으로 잘 정립된 수도규칙서를 작성하여 수도생활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다.
베네딕도 이전에 12개의 수도 규칙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니 그것들이 베네딕도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중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서, 체사리오의 두 개의 규칙서 드리고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가 미친 영향은 현저하다. 체사리오의 둘째 규칙서는 베네딕도의 과업을 예시하고 준비시킨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수도자들의 재산 공유와 정주를 엄격히 요구한다는 점이다. 베네딕도가 제일 많이 활용한 자료는 「스승의 규칙서」이다. 특히 베네딕도의 규칙서 제1부의 많은 부분은 그 규칙서의 내용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창안한 것이 아니며 기존이 다양한 자료들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그의 고유한 카리스마적인 견해들을 첨가하여 종합하면서 모범적 규칙서를 만든 것이다. 그의 규칙서는 실로 교회역사 안에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온 전형적인 것이다.
2)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작성할 때 은수행활의 전통 및 동·서방 공동생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 전통적 수덕의 지나친 엄격성을 피하며 절제와 중용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의 규칙서에 의한 수도자들의 침묵과 고독을 겸한 공동생활은 영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세상으로부터의 은둔과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한 형제적 친교라는 두 가지 이상을 조화롭게 묶었다.
3)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서방사회의 생활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수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 및 사회생활에까지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 비오 12세는 베네딕도를 「유럽의 아버지」라 물렀으며 바오로 6세는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6세기 중엽부터 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수도자들이 점점 늘어났으며 9세기 초 부터는 그들이 전 유럽에 퍼져나갔고 또한 많은 선교사들이 배출되고 파견되어 유럽의 새로운 문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특히 베네딕도의 기도와 노동의 일치 및 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경제 생활 뿐 아니라 영성적 차원에서도 그리고 인문주의 문화 및 교육적 차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미 동방의 수도자들도 사막이나 수도원 안에서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오직 한 가지 주요한 과제인 기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에 그 여가를 메구기 위한 수단 또는 불가피한 경제 생활의 방편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베네딕도에겐 노동이 기도 옆에 놓인 다른 하나의 주요 과제로 고려되었으며 따라서 노동은 기도와 함께 매일의 시간표에 배정되어 부과되었다. 기도와 노동의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하느님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 관상과 활동의 일치를 실현하도록 깨우쳐 주었으며, 노동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던 시민들의 개화를 촉진했고 중세기 새로운 문화의 토대를 준비하며 박차를 가한 저변 쇄신운동이기도 했다.
4) 베네딕도는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성령의 도구로서 뛰어난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한 쇄신을 주도하던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수도원 장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보다 오히려 행동으로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면서 완덕에 나아가는 데 있어 사람들 각자의 특성에 따라 식별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지도해 주던 권위있는 영적 아버지로서의 원장이길 원했다. 과연 그는 탁월한 영적 식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규칙서는 당대 뿐 아니라 오늘까지 영적 식별을 위해 탐구해야할 소중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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