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제가 말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 체력을 다지는 것은 하느님께 다가가기 전 인간적 성숙함을 갖추는 단계라고. 이어 짐을 꾸리는 것은 탐욕을 버리는 단계, 자연을 감상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로 매사를 바라보는 단계. 돌부리에 넘어지는 것은 나약함을 통합하는 단계,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영적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단계라고 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가을산의 정취 속에서 영적 평안함을 찾고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즈음 교구 내 곳곳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가을 산을 찾아보자.
■ 수리산
산봉우리가 독수리가 치솟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수리산(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높이 489m에, 군포시 서쪽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 안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산에 오르는 길엔 바위와 맑은 물이 흐르는 약수터가 많고, 삼림욕 코스도 있어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즐거움을 더한다. 수리산 내 수리산성지도 빠트릴 수 없는 기도터다. 이 성지는 기해박해 중이던 1839년 9월 12일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이 옥사 순교 후 묻힌 유서 깊은 곳이다. 안산선 수리산역이나 경부선 안양·명학역에서 가까워 버스 등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을 조금만 올라도 도시와 떨어져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장점까지 지녔다.
■ 청계산
청계산(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명산이다. 높이는 618m, 주봉인 망경대를 비롯해 옥녀봉·청계봉·이수봉 등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울창한 숲과 아늑한 계곡, 공원, 사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가족 산행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수많은 등산로가 펼쳐져 있다. 산길을 걷다보면 야생밤나무와 도토리나무, 머루와 다래 등 친근한 수목이 먼저 반긴다. 동폭포, 매바위와 돌문바위 등도 둘러볼 만하다.
4개 시에 걸쳐 있는 청계산 등산로 중 교구 내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성남시의 옛골-정상, 과천시의 사기막골-정상·서울대공원-정상·서울대공원(원숭이학교) 뒤편의 샛길-매봉약수터-매봉(응봉)-만경대, 의왕시의 청계사-정상 코스 등이 있다.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세워진 하우현성지는 박해시대 교우들의 피난처였다. 인적이 드문 험준한 이 산골에는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됐고, 신유·병오박해 때 순교자를 배출했다.
■ 광교산
582m의 광교산(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은 산 능선이 완만하면서도 사방으로 수목이 우거져 삼림욕이나 당일 산행으로 즐겨 찾는 곳이다. 겨울철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치를 이르는 광교적설은 광교산의 겨울 절경을 이르는 말로 수원8경 중 으뜸으로 손꼽힌다.
등산로는 경기대-형제봉-시루봉-지지대, 문암골-백년약수터-형제봉-시루봉, 양지농원-토끼재-시루봉-통신대-지지대, 버스종점-절터약수터-억새밭-시루봉, 청련암-통신대-억새밭-시루봉, 지지대-통신대-억새밭-시루봉 등이 있다.
필수코스는 광교산 기슭에 위치한 손골성지. 박해시대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도리(Dorie, 金, 헨리코) 성인과 오매트르(Aumaitre, 吳, 베드로)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신앙선조를 기억하는 성지다. 수원역에서 버스로 20분 소요된다.
■ 용문산
용문산(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은 가을에 특히 더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1157m의 웅대한 높이를 자랑하나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찾으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용문산 안에 위치한 용문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도 자라고 있다.
용문산 인근에는 유명한 ‘양근성지’가 위치해 있다. 조동섬, 권철신·권일신 등 초기교회 여러 신자들을 배출한 이곳은 근기지방(서울에서 가까운 지방)으로도 불리며, 더욱이 권일신과 조동섬은 용문산에서 침묵과 잠심으로 8일 동안 자발적 피정을 하기도 했다.
천주교의 정기가 이렇듯 면면히 서려있는 용문산은 중앙선 용문역이 인접해 있어 지하철로도 접근이 용이하다. 많은 산행객들이 찾는 만큼 소문난 맛집과 편의시설도 많다.
■ 모락산
385m의 야트막한 모락산(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은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는 특별한 모습을 지녔다. 주능선 전망대에 올라서면 의왕시와 안양시가 펼쳐지고 수리산과 관악산도 가깝게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청계산과 백운저수지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제7대 임금인 세조가 단종을 사사하고 왕위에 오른 것을 목격한 임영대군(1418~1469,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은 ‘왕위도 좋지만 혈족간에 살생까지 한 세조에게 반감이 생겨 매일 이 산에 올라 옛 중국 수도인 낙양을 사모했다’고 해 ‘모락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산행(3시간 정도 소요)은 산 북쪽의 계원조형예술대학 후문 삼림욕장에서 시작하여 보리밥고개에서부터 능선을 탄다. 산세가 험준하지 않고 높지 않아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
산기슭에는 한센환우들의 안식처 ‘성 라자로 마을’이 위치해 있다. 이곳 아론의 집에서 피정을 할 수 있으며, 여러 행사와 자선음악회 등도 준비하고 있어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가면 좋다. 이름만큼 예쁜 은행나무들이 우거져있다. 1호선 의왕역, 4호선 인덕원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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