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화와 사도들의 활동
(1) 공동소유 - 친교의 공동체
한 마디로 말해서 그 사회는 이상적인 공산사회였다. 이런 사회는 가톨릭 교회의 수도생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수도자들이 아니었다. 공동체를 통한 수도생활은 약 세기 이후 빠꼬미오(Pachomius, +346)시대에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은 자발적으로 재산을 공유하면서 가난을 없애고 신앙 안에서 친교를 나누면서 살았던 것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서로 친교를 나누면서 살았던 것이다.
친교(親交, koinonia)는 루가 복음사가가 이 부분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사도 성 바오로는 서간에서 13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친교는 성서에 등장하는 주요 주제 중의 하나이며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신앙인들이 상호 일치하여 누리는 유대와 책임감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호 간에 느끼는 따뜻한 친밀감 내지는 공동체적 공감(sensus communitarius)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마음과 마음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육간에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까지도 함께 나누는 이상적인 공산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다』(사도 4,32-36).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바로 성령이었다.
(2)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
그들은 유다인들의 전통과 관습을 따랐다. 그리하여 『날마다 성전에 모여』기도하는 시간에는 함께 참여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신 야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구약의 열심한 아닌 야훼의 법과 옳은 판결을 좋아하여 『하루에도 일곱 번씩 찬양하였다』(시편 119,164). 경건한 유다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였다. 이 관습에 따라 사도들도 제3시(오전 9시), 제6시(낮 12시), 제9시(오후 3시)에 기도하였다. 그들은 사도들과 함께 성전에서 모여 기도하였다. 성령으로 충만한 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기도이다. 기도는 인간의 일이라기보다는 엄격히 말해서 하느님의 일이다. 기도할 마음이 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 마음을 열지 못한다. 성령은 불고 싶은대로 불기 때문에 그들 안에 기도할 마음을 불어넣으신 것이다.
(3) 빵을 떼었다
이 표현은 유다인들의 축제 시에 행하던 의식의 시작이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방을 떼셨고 믿는 이들은 주간의 첫날에 주님의 부활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빵을 떼었던 것이다. 빵을 뗀다는 표현은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에서 특별히 성찬을 위한 전문 용어이다. 이와 같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간의 첫날에 함께 모여 주님께서 행하신 최후의 만찬과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였던 것이다. 그 의식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집회를 위한 큰 장소가 없었다. 빵을 떼고 나누기 위하여 모인 장소는 가정이었으며 그것은 작은 가정교회였다. 그들은 분명히 소수였다. 거대한 유다교 체제하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빵을 떼는 그 의식에서 확인되고 더욱 힘있게 결속되고 있었다. 그 결속은 빵을 떼고 나눈 그 의식 안에서 체험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이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믿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펴고 놀라운 일을 하였던 것이다(2,43-46). 그리하여 믿는 이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게 되었다.
(4) 박해를 당하였다
성령을 받기 전의 사도들은 겁장이들이었다. 자기들의 스승이 붙들려 끌려 가서 십자가에 못박히자 그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불과 혀 모양의 성령을 받은 다음부터는 달라졌다.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담대하게 설교하며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힘있게 증거하였다(사도 2,14-36 3,12-26 4,9-12. 19-205,29-32). 스테파노 역시 담대한 증거자였다(사도 7장). 그들은 비록 박해를 당해도 모두 열성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였다. 그들의 응답은 이러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5,29). 박해를 각오한 용감한 증거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응답이었다.
(5) 선교에 치중하였다
사도들은 승천 직전에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마르 16,15)을 열심히 수행하였다. 성령을 받은 그들은 선교열에 불탔다. 필립보가 이티오피아의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고 베드로는 이방인 관리 고르넬리오와 그의 집안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사도 10,34이하). 이제 그리스도교는 유다인들로부터 다른 민족으로 넘어 가고 있었다. 이리하여 유다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페니키아와 키프로스 그리고 안티오키아까지 주님의 말씀이 전해졌고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정식으로 사도단의 결정에 의해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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