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는 한순간이지만 제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는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군요』
인천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최기산 주교는 첫 소감을 이렇게 밝히면서 신자들의 많은 기도를 거듭 요청했다.
48년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마산리에서 6남 2녀 중 둘째로 출생한 최주교는 고조부 때부터 가톨릭을 믿어온 집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열심한 신자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중학교 때 이미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마산리 공소 출신인 최주교는 어릴적 미사참례를 위해 25리나 되는 거리를 다녀야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이 길이 언제나 행복했다고 회고한다.
이후 67년 소신학교 33회로 졸업한 그는 75년 12월 사제품을 받고 인천 부평1동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소신학교 동창 중엔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천가톨릭대학교 총장 이찬우 신부를 비롯 현재 25명이 사제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중 인천교구 내에도 4명이 있다.
최근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이기헌 주교와는 대신학교 동창이다.
어릴적부터 줄곧 함께 성장해온 이찬우 신부는 『신학교 시절 최주교는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게 생활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학생이었다』면서 『사제가 된 후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신자들을 위해 헌신했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고 밝혔다.
최주교는 본당사목, 교구사목, 해외교포사목 등을 두루 경험했다. 87년에는 인천교구 사목국장을 역임했으며, 90~95년에는 미국에서 교포사목 및 공부를 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미국 뉴저지 데마레스트에서 한인천주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고, 당시 55세대이던 신자 가구수를 240세대까지 끌어올렸다. 최주교는 이때가 미국 교포사목 당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전했다.
미국 교포사목 후 96년 2월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최주교는 교수재임 동안 신학생들에게 『생활 전체를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삶을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란 성서말씀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을 만큼 최주교 자신도 늘상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생활속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기산 주교 약력
△1948년 5월 16일 경기도 김포 출생 △75년 12월 6일 사제서품 △75년 12월 20일 부평1동본당 보좌 △77년 1월 백령본당 보좌 △77년 8월 김포본당 주임 △81년 2월 해안본당 주임 △83년 6월 심곡1동본당 주임 △87년 2월 인천교구 사목국장 △90년 2월 해외교포사목 △94년 4월 미국유학 △95년 6월 산곡3동본당 주임 △96년 2월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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