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불심을 받아 완전함에로 나아가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분을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적 권고의 삶을 공적으로 서약함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내어놓은 이러한 사람들을 「수도자」라고 지칭한다.
「고등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현세적 가치를 포기하고 일반사회를 등진 생활양식」.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나오는 「수도생활」의 정의다. 이같은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수도자」다. 현재 천주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준된 수도회에서 서원(誓願)을 받은 자만을 수도자(남자:수사, 여자:수녀)라고 한다. 수도생활은 주님께서 권장한 생활 형식이며 이렇게 생활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을 「수도 성소」라 한다.
수도생활의 유래와 국내 수도회 기원
넓은 의미에서의 수도생활은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선 기원 후 300년 전후에 도시를 떠나 광야에 근거해 살던 「은수자」들의 삶의 양식을 수도생활이라 할 수 있다.
수도자들의 단체생활이 시작된 것은 4세기 경. 수도생활이 적어도 어떤 공동체 생활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면, 초대교회에서 혼자 수도자와 같이 살던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 수도공동체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집단수도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성 파코미오(292~356)였으며, 성 아타나시오와 성 베네딕도 등이 공동 수도생활의 기초를 닦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교회사 안에서 엄격한 의미로 보면 교회 창립 초창기, 여명기에 벌써 은수자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로 소백산 기슭에서 자발적으로 크리스찬적 은수생활을 하였던 홍유한 선생을 들 수 있다. 이후 한국교회가 창립(1784년)되고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당시의 여회장이었던 강완숙(골롬바)를 중심한 동정녀 및 독신녀들의 공동그룹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 한국교회 창립기에 그 나름대로 수도생활과 봉사활동을 활발히 했다. 또 전주의 유요한과 이누갈다 부부, 권데레사와 조숙 부부도 동정부부 형식의 수도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은 한국교회 초창기의 은수자적 생활 이외에도 박해시대 한국 교우촌의 신자들은 자연적으로 수도생활과 다름없는 은수 및 고행생활을 했다. 국내에 처음 수도회가 들어온 것은 1888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이후 1909년 성 오틸리엔의 베네딕도회, 메리놀 수도회 및 수녀회 등이 속속 들어왔다.
국내수도회 연혁과 활동, 현황
19세기말에서 한일합방 전까지의 국내수도회는 수도원과 학교를 설립해 고등교육과 기술교육, 의료활동을 펼치며 조선의 내적 근대화와 지역사회 개발에 한몫했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 후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맞게 된 국내수도회들은 모든 한국인들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만 했다. 그러나 전쟁과 일제의 와중에서도 관상봉쇄수도회인 「가르멜 여자수녀회」가 1939년에 진출하게 됨으로써 한국교회는 내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튼튼한 기반이 세워졌다는 한 징표를 이 가르멜수녀회의 진출을 통해 역사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성 베네딕도 수도회는 북한지역 선교에 주력하는 한편 자선병원을 설립해 환자들의 치료에 힘썼다. 샬트르 바오로 수녀회도 고아원과 시약소를 설립하는 등 당시 한국사회안에서 건구적 자선사업을 행했다. 일본 식민지 정책 막바지인 1940년대,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수도회는 운영하던 건물들을 강제로 일군(日軍)에 빼앗기는 등 많은 수탈을 당해야만 했다.
일제하 민족과 함께 신음했던 한국천주교회는 8·15 해방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했다. 국내적으론 신앙의 자유로 말미암아 참된 종교를 찾겠다는 움직임과 대외적으론 새로운 국제관계가 맺어짐에 따라 천주교에 대한 일반인의 의식이 새로와졌던 것이다.
교황 비오 11세의 교회 지역화 원칙이 반포됨에 따라 한국인 스스로 수도횔르 창설하여 포교하고, 그리스도교를 한국 땅에 토착화하여 민족 체질에 맞는 수도회를 창설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해방 후 처음으로 창립된 방인 수녀회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이후 성모영보수녀회, 거룩한 말씀의 회 등이 속속 창설됐다. 그러나 한국전쟁(6·25)으로 또 한번의 핍박을 겪기도 했던 한국 수도회들은 전교·영성·의료사업 등에 매진하며 전후 한국사회 부흥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한국사회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한국수도회의 현황을 살펴보면 98년 12월 31일 현재 남자수도회는 36개, 여자수도회는 87개며 정식회원수는 남자는 983명, 여자는 8224명이다.
흔들리는 수도자상
지난 100년간 국내 수도회 활동은 선교와 근대화의 계몽교육, 자선사업 등으로 대별될 수 있다. 또 북한 땅에 있었던 수도자들은 북한 공산당에 대한 정신적인 투쟁사로서 잘 나타나 있다. 100년간에 걸쳐 한국에 들어온 각국 수도회와 일제시대화 해방 후에 창립된 방인 수도회 역시 그들 나츰대로 고유한 역할을 한국사회안에 충분히 실천에 옮겼다고 볼 수 있다.
새천년을 목전에 둔 지금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국내 수도회들도 또 다른 측면에서 그들의 고유한 사명이나 역할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남녀 각 수도회는 현 시대의 한국 사회안에서 그 고유의 사상과 그 전통성을 어떻게 계승하고 어떻게 개혁 발전해 나갈 것인지 그 방향과 기준을 밝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도자들의 수도생활도 새로움에 대해 적응과 쇄신의 과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변화를 재도약을 위한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변화에 흔들려서는 안될 부분과 과감하게 고치고 버려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냉철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서구 각 나라에서 도입된 수도회들의 강한 사상과 영향력이 한국사회안에서 너무 서구적인 양식의 도입에만 치우쳐 한국이라는 전통 사회가 지니고 있는 토양이나 체질에 대해선 무관심했음이 아닌가에 대해 반성해봐야 할 것 같다. 신심이나 자기과시에 치우쳐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등한시 하지나 않았는지,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햔 제시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분석해 봐야 한다.
새천년에 바라는 수도자 모습
21세기를 맞이하는 수도자들은 먼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지녀야 할 것 같다. 즉 하느님 말씀을 구현키 위해 복음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자세를 겸비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타인에게 올바른 삶의 표양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수도자 자신의 신원도 공고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택한 목적의식이 분명해 진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 황춘흥 신부(성베네딕도회·74)는 이렇게 말한다.
『수도자들의 삶은 일반 신자드에게 의문을 주는 삶이어야 됩니다. 「왜 저 사람들은 형제나 친척을 뒤로하고 혼자 가난하게 살면서 남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지 참 의문스럽다」라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수도자로서의 권위도 형성될 수 있고 사회개혁의 디딤돌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온갖 박해를 당하시다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 분의 삶은 신비의 극치며 의문의 연속이다. 이러한 그분의 삶을 따르는 수도자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교황 바오로 6세도 「수도생활 쇄신」에 대한 사도적 권고에서 『여러분은 하늘 나라를 생각한 까닭에 사랑의 힘, 소유욕, 자기의 삶을 꾸려 나갈 자유,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것들을 넓은 아량으로 남김없이 그리스도께 바쳤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분의 봉헌인 것』(「수도생활 쇄신」7항)이라고 말했다.
새천년엔 고통받는 형제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상처를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수도자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또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에 온전히 참여하며, 세상속에서 복음의 증거자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지니길 간구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수도자들에게 늘 『수도생활이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사명에 다시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말라』며 『여러분은 곧잘 십자가의 표징이 수바되는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통해, 그리고 성실한 봉사와 끈질긴 희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깊은 신앙을 드러내보이며 또 악보다 훨씬 강력하고 죽음보다 한결 힘있는 그 사랑을 증거하라』고 당부한다.
이와 더불어 친교와 화해를 통해 동반자적인 삶을 사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사고(思考)에서 탈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철저한 섬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지난 10월에 개최된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도 「화해를 통해 예수님께서 사셨던 인간존중과 평등사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천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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