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서상돈’/차기진 박사(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소장)
“실천적 신앙인이자 민족운동가”
최근 국채보상운동의 실상과 의의를 비롯해 그 주창자 서상돈 회장의 삶과 신앙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데 이는 교회 복음사적 입장과 민족사적 입장에서 함께 연구할 필요성을 가진다.
서상돈은 36세 때 로베르 신부가 경상도 신나무골 교우촌에서 전교를 할 때부터 교회 활동에 적극 참가, 성전건립에 특히 많은 기금을 봉헌했다. 또 교회 내 교육사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애국계몽운동에서의 서상돈의 역할을 충분히 알기에는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밖에도 그는 검소하게 살면서 고아 양육 등 많은 자선사업을 베풀고 이를 전교의 기회로 삼아 실천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다.
민족운동가로서의 그는 애국계몽단체인 대구 광문사 문회에 참여, 국채보상운동 발의서를 냄으로써 신지식인으로서의 민족 계몽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인 그는 철저한 신앙인이자 민족운동가로 자신의 사상안에서 교회와 국가관을 일치시켜 나간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일제시기 교회가 정교분리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민족의 고난을 등한시했던 일부 선교사들의 태도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지나치게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어 간 교회를 강조해 일제 침탈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국인 성직자들의 계몽운동이나 지방 교회 신자들의 활동이 묻혀 버렸으며,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객관적으로 이해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신앙인이자 민족운동가로서 추앙받는 안중근 의사에 앞서 서상돈은 교회사 안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고 더 자세히 연구돼야 할 것이다. 이는 애국 계몽기와 일제 초기에서의 한국 천주교회사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당시 교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대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교회가 국가와 관계없이 교회만을 보호하려했고, 그 안에 안주하려 했다는 지적을 불식심켜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서상돈 선생의 국채보상운동이 갖는 현대적 의미’/김영호 교수(경북대 경상대학장)
‘세계경제정의구현 시민운동’의 계기
금세기말 세계 자본주의에 문제점으로 나타난 외채누적 현상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시민사회는 세계적 연대를 형성해 「외채와 투기자본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 Debt Speculation)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 중 외채 문제에 대한 「주빌리 2000」과 투기자본에 대한 금융시장과 금융기구의 민주적 조정을 위한 국제 운동(ATTAC-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과세연합)이 특히 주목을 끌고 있다.
주빌리 2000운동은 유다인들의 전통에 의거해 2000년이라는 대전환기에 최빈국의 외채를 탕감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채는 상환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지 탕감해 주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뿐 아니라 돈 가진 자가 빌려주기를 꺼리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가난한 나라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자본자유화의 피해 확산에 대응해 각국의 금융자본이 나라 안팎을 드나들 때마다 일정한 비율의 세금을 매겨 자본이동을 제한하자는 토빈세도 세계 각국이 일제히 실시하지 않으면 성과가 나오기 어렵고 힘없는 국가만 피해를 입을 우려가 커 새로운 「토빈세 라운드」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학계나 시민단체는 단순히 이러한 운동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를 갖고 창조적 접근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외채를 탕감해 달라는 운동이 아니라 그것을 갚겠다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 시민운동이자 시민 채무대응 윤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채권자의 일방적 선심이 아닌 자기반성을 토대로 하는 탕감과 채무자 역시 무조건적인 탕감이 아닌 외채를 갚으려는 의지를 가지는 쌍방통행형 문제해결방식이다. 그동안 국내 구조조정에 치중한 한국정부와 시민사회는 이제 국제경제정의, 국제구조조정의 문제로 시선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열렸던 「대구라운드 국내대회」와 10월에 열렸던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는 국채보상운동의 현대화·세계화를 모색하면서 세계의 가난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세계외채문제해결 시민운동, 세계경제정의구현 시민운동의 계기가 될 것이다.
■ ‘서상돈 선생의 신앙심과 애국심’/서인석 신부(대구효성가톨릭대 신학대학)
국채보상운동은 순교자 정신의 발로
서상돈 선생이 국채보상운동으로써 빚을 갚겠다고 생각하고 나선 것은 바로 순교자 정신에서 기인했다.
세계 외채탕감에 큰 역할을 하는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근본은 또한 성서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성서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하느님의 궁극 목적은 모든 사람이 사는 것이다. 대희년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는 의미를 가지고, 사회정의 건설을 위한 중대한 해가 된다.
대희년의 목적은 성서 레위기(25,8~54)에 네가지로 나타나 있는데 특히 백성들이 가난해서 해방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 첫째는 주로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들의 육체적 해방이다. 실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다.
두번째는 사유재산 재조직이다. 이는 평등한 경제위치와 경제해방을 의미하며 부(富)가 극소수에 축적되어서는 안된다는 윤리도덕을 포함한 것이다.
대희년의 셋째 목적은 땅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는 땅도 인간처럼 휴식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환경보호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넷째는 가진자들의 회개를 위한 교육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대희년은 특별히 모든 사람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해 생명을 얻고 지상의 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해이다.
세계 선진국들은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잘 알고 있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끝없이 굶어 죽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분쟁은 계속 될 것이다. 무기 경쟁, 공학기술만 중시하고 정의와 법을 무시한다면 소위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된다. 또 땅은 황폐되고 독기를 내뿜는다.
뿌리, 민초로부터의 저항이 없으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억압된 교회가 예언자 교회의 전통을 먼저 말해야 된다. 즉 빚이 있다면 돈을 갚아 해방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외치는 것은 순교자의 믿음, 교회의 정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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