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익산 팔본선교본당(주임=송영진 신부). 지난 97년 8월 「찾아가는 교회」를 기치로 작은 공소에 둥지를 틀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주일미사 참례자가 60여명에서 12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열심히 살고 전교하는 팔봉 신자들에게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15년가까이 만성 신부전증을 앓으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오갔던 본당 신자 손명자(율리아·38)씨가 10월 14일 신장이식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 송영진 신부를 중심으로 한 본당 신자들의 지극정성. 가톨릭신문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 같은 본당 신자이면서 이웃에 살고 있었던 신장 기증자 연정웅(율리아노·44)씨와의 극적인 만남이 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작은 기적」은 물론 손명자씨의 깊은 신심과 열심한 활동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손씨는 선교본당이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본당 여성분과 차장으로 일하면서 예비신자의 반 이상을 교리반에 인도하고, 본당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오다시피 했다. 매주 세번씩이나 병원을 찾아 투석치료를 해야하는 몸으로….
손씨는 지난 84년 첫 아이를 낳고 만성 신부전증 환자로 판명돼 그때부터 매주 한차례씩 투석치료를 받아왔다. 병세가 심해져 96년부터는 매주 세차례씩 병원을 찾아야 했으며 손씨의 팔에는 더이상 주사바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 몸을 이끌고도 틈만나면 성당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금기야 지난 겨울 감기몸살이 겹치면서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병자성사까지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신장이식수술이 아니면 회복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본당에서는 사회복지분과비를 다 쏟아 부었고, 이웃들의 도움도 답지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본당에다 가난한 시골지역이라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아! 이제 무엇인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작은 기적」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14일자 본보에 손씨의 딱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보도가 나가고 3주만에 수술에 필요한 1500만원 정도의 성금이 모였다. 전국에서 약 300여명의 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수술비를 모아주었으며 지금까지도 조금씩 성금을 보내오는 분들고 있다. 또한 신장 기증자도 7명이나 나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혈액형이나 조직검사 결과가 맞지 않아 모두 무산됐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증자를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3월, 부활을 앞두고 성당 청소를 같이 하던 연정웅(율리아노·44)씨가 갑자기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제의해왔다. 손씨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증의사를 밝혀올 때는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었는데, 같은 성당에 적을 두고 이웃에 살고 있는 연씨가 상상도 못한 가운데 기증 제의를 해오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말이 신장 기증이지 생명을 담보로 신체의 일부를 떼어주는 일이 아닌가.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나 가족 같으면 부담이 덜하련만….
『아픈 몸으로 성당일에 열심한 것이 너무 예뻐 신장이라고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연정웅씨. 사실 그의 삶도 손씨만큼이나 힘들고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인천에 있는 가족을 떠나 객지에서 혼자 살고 있을까. 연씨는 스스로를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한다. 여행과 방랑을 좋아해 가족 돌보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엎친데 엎친격으로 탄광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1년 넘게 입원해야만 했다.
98년 4월 퇴원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또 방황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곳 익산에서 직장을 구하게 됐고, 우연하게도 팔봉선교본당 구역이자 손씨의 집에서 40m 정도 떨어진 이웃에 거처를 마련하게 됐다. 작고 소박한 성당이 마음에 들어 눌러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연씨는 교적을 옮겨오고 주일미사에 나가면서 신자들과 인사를 트기 시작했다.
연정웅씨는 평소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은 콜베 성인의 삶을 존경해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보람있게 장기기증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신장기증을 결심하는데는 가족에 대한 속죄의 심정이 앞섰다. 가장으로서 변변하게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부인과 두 남매의 앞길을 대신 보살펴 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수술대에 누웠다.
회복기에 있는 두 사람을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팔봉선교본당 신자들은 이번 일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면서 새삼스럽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모여 한 생명을 살렸다고 깨닫고 있다. 송영진 신부는 『돌이켜보니 성령의 섭리였다』고 말하고 전국에서 도움 준 은인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손명자씨는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또한 통장에 찍힌 은인들의 이름을 보며 항상 기도하겠다며 도움 준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연정웅씨는 손씨가 제발 부담갖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며 지나간 일인듯 담담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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