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코미디 한 편.
이성과 마주서서 말만 해도 불량학생으로 간주되던 70년대 초반. 어른들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던 나는 남학생과는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한(?)채 여고시절을 마쳐가고 있었다.
예비고사를 마치고 대학 본고사를 20여일 앞둔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중 가장 순수한 느낌으로 남아있던 한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무척 촌스럽게 『우리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여고시절도 이제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터여서 였을까? 어디서 용기가 낫는지 나도 『본고사를 마치면』이라고 대답했다. 고등학교를 재수하는 바람에 아직 고3이었던 그를 대학에 가서도 두어 번 더 만났는데, 아마도 두 번째 만나는 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생각지도 않게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
그와 헤어진 후, 나는 무안해서 그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백치」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당시 나의 이상형이었으므로 백치의 주인공 같다는 말은 『넌 나의 이상형이야!』라는 고백인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를 만날 일이 너무 고민스러웠다. 심지 없게 그렇게 쉽사리 속마음을 내보인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창피를 무릅쓰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약속 장소에 나간 내게 그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백치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그리고는 불량학생의 상징이던 담배를 빼어물고는 바둑잡지에 난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는 등 알량한 호기를 부렸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어찌보면 그는 이성, 곧 금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을 키우고 있던 내게 이성 역시 반 친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준 귀중한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이즈음, 우리 출판사와 대각선 방향에 있는 병원의 마음씨 좋은 의사 선생님이 그 남학생과 꼭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코미디가 생각나 하마터면 이렇게 물을 뻔했다. 『선생님, 므이쉬킨 공작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가끔 자신의 문제에 코를 박고 있느라 상대의 내면은 전혀 보지 못하고, 겉모습 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하고 분노하고 단죄한다. 오늘 출애굽기 6장에서 만날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모습도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하느님은 우리의 그런 실존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언어나 문체 면에서 사제계 전승(P)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 6장 2절에서 7장 7절까지의 내용은 이미 3장 1절 이하 4장 16절에서 모세가 받았던 소명의 반복으로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가 부르심을 받은 장소가 미디안에서 이집트로 바뀐 것 뿐이다. P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살고 있었을 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전제한다.
1~8절에서 말씀하시는 주체는 하느님 자신이시다. 그분은 『나는 야훼다』라는 자기소개로 시작하여 역시『나는 야훼다』라는 자기확인의 말씀으로 끝을 맺으신다. 3절에 의하면 그동안 하느님은 엘 샤다이로만 알려졌을 뿐 야훼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사제계 전승은 족장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하느님의 이름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새롭게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새로운 이름을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은 곧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새롭게 계시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새 이름 야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출애굽의 약속을 이제 역사 안에서 행동으로 성취하겠다는 것(6~7절), 아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셨고 자신이 맺으신 계약을 이미 기억하셨기에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이미 행동을 시작하셨다는 새로운 사실의 표현이다.
이 새 이름은 새로운 계시로 시작되는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적 행동과 관련된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파견된 모세는 이러한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9절은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전하지만, 백성들은 세파에 시달려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런 모습은 자신의 힘든 처지에만 눈이 어두워 사회나 공동체의 대의(大義)를 생각할 줄 모르는 우리네 인간 실존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모세는 왕따가 된다.
10절 이하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또 다른 사명을 주신다.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스스로 시작하라는 사명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부르심을 받기 전(2장)부터 자기 백성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봐야 오해밖에 받지 못한다는 체험을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오해 받고, 왕따 당하기 싫은 모세는 이 사명을 거절하기 위해 핑계를 댄다. 『저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12절) 대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백성들로부터 끊임없이 오해 받고, 지탄 받고, 소외 당하는 고통을 모세라고 어찌 쉽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6장 13~30절은 P의 관점에 따라 아론을 모세의 형제라고 소개하기 위해 매우 오래된 조상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삽입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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