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이 정신성을 추구하는 이치와 관련하여 리치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인간은 어째서 육신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서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애쓰는가?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어째서 인간은, 사후(死後)에 좋은 이름, 좋은 평판을 남기거나, 의(義)를 위해 한 몸의 생명을 바치기도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인간 영혼의 정신적 차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리치의 설명은 단순명쾌하다.
첫째로, 인간은 누구나 좋은 평판이나 큰 영예를 구하며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어 비록 생명을 잃더라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죽은 다음에 남는 평판은 소멸하는 육신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상존(常存)하는 영혼이 명성의 좋고 나쁨을 아는 것이다. 만약 영혼이 육체의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면, 인간이 어찌 수고를 하면서 명예를 추구하겠는가? 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아름다운 그림을 걸어놓고 눈이 멀게 되었을 때 보겠다는 것과 같다. 또 아름다운 음악을 갖추어 놓고도 자신의 귀가 먹게 되었을 때 듣겠다는 것과 같으니,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효성스런 자식은 때가 되면 돌아가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린다. 그런데 육신이 사라진 부모의 혼령(魂靈)들이 후손의 애도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기는 마음과 모습을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헛된 놀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평판과 명성을 추구하며 죽기까지 쉼이 없는 것이다.(人人求之至死不休)
둘째로, 유물유칙(有物有則, 詩經, 大雅, 蒸民).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자연세계의 구조를 정신적인 것과 동물적인 것으로 나누어 보는 리치에게, 사물의 세계는 자신의 본성을 따르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물의 법칙은 사물이 욕구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달성된다. 동물은 동물성을 추구하고, 인간의 영혼은 정신적인 것을 욕구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창조계의 욕구를 달성토록 허락한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법칙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현세의 편안함을 뒤로 하고 군자(君子)의 수행생활(修行生活)에 몰두하는 것은 내세의 진복(眞福)을 소망하는 인간 영혼의 참 모습이다. 그러니 영혼이 육신처럼 소멸된다면 참된 복을 추구하는 것이 헛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셋째로, 세상의 사물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자연 상태에서 동물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다가 배를 채우게 되면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동물들의 욕구는 물질적이어서 이 세상에 한정되어 있다. 이와 달리, 인간의 욕망은 현세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의식주와 재화에 대한 욕망이나, 혹은 세상살이에서 원하던 벼슬과 명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취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끝내 잠재워지지 않는다. 리치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성정(性情)이나 욕구는 본래 경계가 없고 무한하기 때문이다.(天主所稟情欲. 原乃無疆之壽無限之樂) 그러니 정신성의 최고 실존인 하느님만이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채워주실 수 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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