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격이면 아주 저렴하게 드리는 겁니다. 믿고 사세요』『아저씨 소문 듣고 왔으니까 잘 해주세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도 상인들의 분주함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고품질의 농산물을 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와 상인간의 가격 흥정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기도 하다.
땀의 소중함을 만끽할 수 있는 가락동 시장에서 15년째 고추장사를 하고 있는 우국제(마태오·51)씨. 이곳에 자리잡기 전 용산시장에서 78년부터 시작했으니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씨의 이러한 경력만 본다면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의 삶 자체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는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거동도 불편한 장애자이다. 갓난 아기였을 때 심한 충격을 받은 후유증 때문.
그런 그가 행려자들의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집」에서 10여년간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 급식소는 뜻을 모은 신자 상인들과 마리아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가 힘을 합쳐 지난 90년 12월 설립한 곳. 우씨 또한 급식소 설립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누구보다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애착을 가지고 이 일에 매달렸던 것이다.
『제 자신이 너무나 큰 고통을 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제 일처럼 열심히 이 일을 도왔어요』
10년전부터 우씨와 잘 알고 지내온 이정주(요셉)씨는 그를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 앞장서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작은 천사』라고 평했다. 이씨 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동료들은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봉사활동하는 그에게서, 신앙인으로서의 훌륭한 모범을 배울 수 있다고 전했다.
우씨는 어릴적부터 잘못된 사회 편견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소위 「왕따」를 당하며 급우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는 우씨.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이란 급우들의 비아냥이 어린 그의 마음을 너무나 멍들게 했던 것이다.
『한번은 제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팽개치며 어머님께 왜 나같은 병신을 낳았냐고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님께서 어떤 부모가 이렇게 낳고 싶어 낳았겠느냐고 하시며 저를 붙잡고 하염없이 우시더라구요. 그 이후로 저는 학교에서 아무리 괴롭힘 당해도 절대 내색하지 않고 혼자 조용한 곳에 가서 울곤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청소년기에 그의 최대 기쁨은 바로 성당 가는 것이었다. 4대째 신앙을 이어온 독실한 구교우 집안에서 성장한 우씨에게 성당은 삶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는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해주던 신자들을 통해 멍들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곤 했다.
우씨는 이처럼 어렵게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꿈꾸다가 또 한번 심한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다. 농과대학에 진학해 나무들을 키우며 살고 싶었던 그는 당시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도, 2차 신체검사에서 장애인이란 이유로 탈락해 그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인생의 청사진이 무참하게 부서진 우씨는 되로운 마음에 그만 죽을 결심으로 약을 먹고 말핬다. 그리고 이틀 후, 그는 기적처엄 다시 깨어났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진심으로 후회하며 마음을 다잡게 됐다.
장애자로서 겪어야 했던 설움과 고통의 나날들, 그는 이 모든 난관을 시앙과 봉사활동으로 헤쳐나올 수 있었다. 아직도 미혼이라고 밝힌 우씨는 『결혼이란 것이 사람의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제 여력이 다할 때까지 행려자들을 돕는데 동참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예요. 제게는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이신 주님과 사랑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이 길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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