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원삼면에 소재한 고초골공소의 아침은 새벽 5시의 새벽기도부터 시작된다.
수원교구 양지본당(주임=안병선 신부) 관할 공소 중 가장 먼거리에 위치한 고초골공소는 17가구 41명의 신자가 전부지만 이곳에 신앙이 전해진 것은 약 150여년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100여년전에 건립된 옛 공소의 목조골격은 그대로 남아있어 고초골공소를 찾는 사람들에겐 신앙선조들의 체취를 흠뻑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발길을 돌리고 평균나이 75세를 웃도는 노인들만이 사는 시골이어서 그런지 과거의 활발했던 신앙의 열기는 점차 식어가는 상태.
그런 이곳에 신앙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준 사람이 바로 평신도 선교사 박건호(베드로·55세·0335-332-7947)씨.
지난 2월에 고초골동소로 아예 거처를 옮긴 박건호씨는 매일 새벽기도를 주도하며 주일이면 20여㎞나 되는 성당까지 차량봉사를 해 주는 등 고초골 신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양지본장과 가장 먼거리에 위치한 고초골공소는 성당과 거리가 먼 탓도 있지만 불편한 교통편을 대신해 성당까지 차량 봉사할 젊은이가 없어 신앙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어왔었다.
물론 처음에는 허물어져 가는 공소건물 수리와 주변단장이 그가 맡은 큰 몫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흐려진 본래의 공소모습을 되찾기 위해 건물 내외부를 원형대로 수리를 마무리하고 공소에서 피저을 할 수 있도록 4개의 방과 주방시설, 수세식 화장실도 추가로 설치했다.
성모상도 보기 좋게 단장을 하고 마당에는 돌을 주워 깔았다. 신자들이 사망했을 때 사용하려고 넣어두었던 상여 창고를 벽지만 바른 채 자신이 쓸 방으로 꾸미기도 했다.
1년도 채 되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고초골공소는 새로운 선교사의 피나는 노력봉사로 공소건물은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고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활기를 솟구치게 했다.
교리 배운 재소자 350여명
모태신앙이었던 부인 서의순(카타리나)씨와의 결혼을 계기로 76년에 영세한 후 줄곧 교리교사와 선교사로 활동해온 박건호씨가 고초골공소까지 찾아오기까지는 남모르는 애환도 많았다.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그가 겼은 가장 큰 실망은 자신이 직접 교리를 가르쳐 세례 받게한 출소자로부터 사기를 당해 약 3억원의 전재산을 손해 본 일이다.
교리신학원 졸업과 사목상단원을 이수하면서 선교사자격증과 2급 카운셀러 자격증을 취득한 박건호씨는 84년부터 지난해까지 교도사목회 봉사자로 영등포구치소 등을 다니며 재소자 교리를 가르쳐 왔다. 14년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영세한 재소자만 줄잡아 350여명.
그는 한때의 실수로 잘못한 이들이 신앙을 얻으면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자체를 하느님께 감사했고 보람으로 삼았다.
1년 과정의 서울대교구 사목상담 과정을 마치며 얻은 상감기법을 통해 재소자들로부터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잇는 몇 안되는 교리교사였기에 재소자들을 진정으로 받아 들이며 깊은 신뢰 속에서 그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어떤 사업을 해 볼까? 하고 고민하던 그에게 영등포구치소 시절 자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영세한 한 출소자로부터 사업제의를 받았고 그를 믿었다가 결국 3억원의 전 재산을 날린 것이다.
고소하면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었건만 박건호씨는 자신이 가르쳐 영세한 그를 깊은 묵상 가운데서 용서의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박건호씨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생전 처음 유황오리탕이라는 음식점을 냈으나 불행히도 IMF를 맞아 또 다시 문을 닫아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한 박씨는 하느님 사업만이 자신이 실패 없이 할 수 있다고 판단, 양지본당 안병선 신부의 도움과 협조로 고초골공소를 맡게 된 것.
뼈를 묻을 각오로 고초골공소를 찾았다는 박건호씨는 아직 선교사 월급을 받아보지 못했으나 신앙선조들의 영혼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때때로 각 본당을 다니며 신앙강좌, 견진교리, 사순, 대림특강 등을 하고 있는 박건호씨는 97년부터는 영상포럼 교육을 창안, 5명의 멤버들과 함께 성당과 단체를 찾아 나서고 있다.
작은 꿈이 있다면 현재 예쁘게 꾸며놓은 공소건물을 피정 장소로 개방, 도회지 신자들에게 개방하는 것.
약 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고초공공소는 성당 앞 공터를 야영장으로, 또 공소에 딸린 땅을 이용해 수영장 등을 만들어 주일학교 학생들이 야영을 하며 즐기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이 그이 소망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소망은 영세때 이후 한번도 변하지 않았던 한가지가 있다. 바로 「선교사로서 살다가 신앙 때문에 죽는 것」.
새천년의 대희년을 살아가는 평신도 선교사 박건호씨는 신앙때문에 죽을 수 있고 신앙 때문에 고난 당하더라도 세례 때 받은 그 뜻대로 살다가 최우희 순간을 맞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고 여기고 있다.
더 바랄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사기를 친 그 출소자가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죄짓지 않고 살아 가는 것.
고초골공소의 첫새벽을 깨우는 선교사 박건호씨의 발걸음이야말로 잠들어 가는 이 지역 신앙의 숨결을 일깨우는 작은 외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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