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가 설정됐던 1963년으로 돌아가보죠. 그때 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었어요.
1963년 당시 교구 설정에 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북수동본당의 장금구 신부님이 주로 교구 설정안을 갖고 노기남 대주교님께 찾아가 의견을 냈다고 짐작해요. 그때는 그런 일을 주교님들이 다 하셨으니까. 신부님들도 다들 아시진 못했지만 장금구 신부님은 구체적으로 의견을 올렸던 것 같아요. 또한 그땐 서울대교구도 교구가 넓고 교세도 크고 하니 교구를 가를 것이란 짐작은 했어요.
그러다가 10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수원교구 설정칙서 ‘최고의 목자’ 반포와 함께 내가 초대 수원교구장에 임명된 것이죠.
내가 이러한 사실을 통보 받은 것은 10월 9일 한글날이었어요. 당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장충동에 일본식 집을 사서 그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로마 유학 후 부임 3년 째였는데 메리놀외방전교회 한 요안 신부님이 주임신부고, 난 보좌신부였죠.
그땐 한글날이 휴일이었는데, 휴일엔 식복사 아주머니가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하이씨 신부(당시 함께 생활하던 보좌 신부)와 내가 교대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어요. 그 주엔 내가 당번이라 미사 후에 내가 아침을 차려서 먹고, 혼자 남아 천천히 묵상 기도를 하고 있을 찰나였죠.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어요.
어느 피정 중에도 내가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사제품 받은 지 13년이 되도록 보좌 신부 생활만 하고 있어, 생각이 많던 때였어요. 그래서 본당 주임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기쁜 마음으로 사제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기도를 올렸어요. 그 때 초인종이 울린 거죠.
나가보니 교황대사님의 기사가 차를 가져와 교황대사님이 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차를 타고 교황대사관에 가면서 ‘대체 왜 나를 불렀을까?’라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다 1962년 공의회 첫 회기 때 주교님이 원로 신부님들을 모시고 다녀오셨던 생각이 나, ‘혹시 공의회 때문에 나를 부르시는 걸까?’라고도 생각했어요.
교황대사님 앞에서 들은 이야기는 정말 뜻밖이었어요. 교황성하께서 수원교구를 설립하셨고 나를 초대교구장으로 임명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놀라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그날 저녁까지 말미를 주셨죠.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레 어느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를 했어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됐죠. 그러다 ‘주교는 내 능력과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에 겸손한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다시 교황대사님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제게 중책이 맡겨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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