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65).
주님께 나아가는 걸음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그래서 순례는 자신도 모르게 등돌려온 주님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 그로 인해 새로운 성찰과 회개로 나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별히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체험한 제자들(마르 4,35-41)을 묵상할 수 있었던 이번 순례는 험난한 뱃길도 마다않고 세상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성인들의 삶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 순례단을 싣고 주님 수난·부활의 현장으로 안내한 크루즈 ‘비전’호.
◎…아기 예수님을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여정의 첫걸음. 그래서일까,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을 품고 있는 갈릴래아 지방으로 들어서며 설레는 마음과 섞여 묘한 긴장감마저 밀려든다. 순례단은 ‘주님탄생예고 성당’과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를 거쳐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빵의기적성당’을 둘러보고 입구에 ‘Town of Jesus(예수님의 마을)’라는 글귀가 선명한 카파르나움으로 여정을 이어갔다.
저녁 햇살이 기웃기웃 티베리아스 호수 언저리를 맴돌 즈음 순례단은 갈릴래아 호숫가 언덕에 서 있는 ‘참행복선언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너는 네 삶에서 무엇을 잡았느냐?” 물고기를 구워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전날의 감동으로 벅찬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순례단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성지 중의 성지 예루살렘. 예루살렘과 인접한 베들레헴이 첫 목적지다. 누구든지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선 예수탄생성당(The Church of the Nativity), 순례단은 은빛의 ‘베들레헴의 별’로 표시되어 있는 예수님 탄생 장소에 친구하며 2000년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 다가온 주님의 사랑에 몸을 떨었다.
예수 탄생 성당 왼편에 자리한 성 가타리나성당으로 걸음을 옮긴 순례단은 성당 지하에서 예로니모 성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 베들레헴 ‘예수탄생성당’에서 순례단이 은빛의 ‘베들레헴의 별’로 표시된 예수 탄생 장소에 친구하고 있다.
▲ 순례단이 베들레헴 성 가타리나성당에서 미사 봉헌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빵 집’이라는 뜻을 간직한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넘어오는 짧은 시간은 만감이 교차하게 만든다. 두 도시를 나누는 분리장벽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예루살렘의 첫 인상을 슬픈 도시로 바꿔놓기 십상이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은 지금 걸어도 2000년 전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을 증언하는 갖가지 흔적들이 생생한 역사처럼 펼쳐진다. 이스라엘 순례는 ‘예수님무덤성당(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전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순례자들로 들어찬 성당 1층에 자리한 ‘주님무덤경당’. 순례자들은 십자가의 굴욕이 부활이라는 완전한 승리로 이어진 현장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 예루살렘 겟세마니성당 제대 모습. 앞 바닥에 놓인 큰 바위는 예수께서 피땀흘리며 기도하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 골고타 언덕 주님의 무덤이 있던 곳에 세워진 ‘예수님무덤성당’ 내부의 성묘 경당. 전 세계에서 모인 순례단들이 운집해 있다.
◆ 최고령 참가자 김경진·이군자씨 부부
“말로 다하기 힘든 감동 체험”
▲ 김경진·이군자씨 부부
가톨릭신문이 처음 시도한 크루즈 성지순례에 함께한 이들 가운데 최고령 참가자인 김경진(요셉·80·서울 여의도본당)·이군자(데레사·70)씨 부부는 지금도 터키 에페소에서 순례한 성모 마리아의 집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요동친다. 나란히 산수(傘壽)와 고희(古稀)를 맞아 자녀들의 권유로 순례에 나서게 됐다는 이 부부는 둘이서 함께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며 서로를 쳐다본다.
적잖은 나이에 첫 해외 성지순례에 나선 김씨는 “한 배를 탔다는 느낌이 서로를 배려하며 한 가족처럼 푸근하고 편안한 여정이 되도록 했던 것 같다”며 “그저 좋았던 개인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 보시기에 보다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