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입양보낸 미혼모는 상실의 고통 속에 살고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는 존재의 고통 속에 살지요』
한 미혼모의 이같은 독백은 미혼모가 아이를 기르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결코 한 순간에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한해동안 이루어지는 낙태건수는 무려 2백만 건을 헤아린다. 그런 와중에 약 2만명 가량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입양을 보내지만 드물게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정하는 미혼모도 있다.
아이를 키울 경우,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전체의 차가운 시선들과 지지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영리하지 못했다고 비웃는 이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혹시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까봐 혈육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화곡동에 위치하고 있는 미혼모를 위한 「성심어머니의 집」에는 「아이를 낳겠다」는 용기있는 선택을 한 이들이 그 선택에 대한 외롭고 아픈 고통을 딛고 일어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와 새 희망의 기운이 있다.
「생명을 택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신명 30,19)이라는 모토로 지난 96년 10월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성가정 입양원 부설기관으로 문을 연 이곳.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그룹홈」형식의 미혼모 시설이다.
미혼모의 산전산후 관리, 출산 관리 및 직업교육, 신앙상담, 청소년 선도교육, 교양교육, 문화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성심 어머니의 집은 오전 7시30분 기상 청소가 시작되면서 하루가 열린다. 이 집의 「대모」신가우디아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의 총 지휘(?) 아래 기도 식사 산책 교육 병원진료 휴식 데꼬빠쥬 수지침 퀼트 홈패션 한복수업 등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기자가 찾아간 날 점심식사후 담소를 나누던 중 이틀전 아이를 출산한 ○○에게 친척의 전화가 걸려돴다. 예정일보다 출산이 빨랐던 ○○의 안부와 건강상태를 묻는 친척과의 통화후 ○○의 큰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그런 ○○의 모습을 보고 신 수녀가 농담으로 던지는 말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다더냐』
그러나 신수녀는 ○○의 눈물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낙태와 출산사이에서 번민 했던 일들, 어려운 출산을 했으나 앞으로 감당해야할 비난과 냉대, 부득이 아기를 입양보내며 느끼는 아픔과 죄책감들」을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96년 처음 이 집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이 이아들을 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숨이 막히는」느낌을 경험했던 신수녀는 그러나 이제는 매일 매일의 일상을 함께 꾸려가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세상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다.
5~6명이 수용가능한 최대 인원일 정도로 조그마한 집에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자신의, 협조자 및 지인들의 조그만 관심이 아이들의 미래를 살릴 수 있다는데서 갖는 「희망」인 것이다. 「인생을 망칠려고 결혼도 안하고 아이를 낳느냐」는, 흔히들 미혼모들에게 쏟아놓는 이야기들에 대해 신 수녀는 오히려 격려를 하는 편이다.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진 것」이며 「정말 인생의 진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신 수녀는 좋은 환경에서 축복속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들보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어쩌면 더욱 진한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경험을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4년여를 넘기며 신 수녀가 받은(?) 아이는 86명. 대부분 입양이 됐지만 엄마와 함게 사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그중 가장 큰 아이가 이제 4살. 어린이집을 다니고 잇는 모습을 보며 대견함을 느낀다.
날때부터 뇌성마비 경향이 있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온방을 헤메면서 소리를 지르던 ○○. 눈물어린 인내로 치료와 보호를 위해 발로 뛴 엄마덕에 ○○는 이제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신 수녀가 기도 속에 잊을 수 없는 아이다.
여건 미비로 아이들을 충분히 도와주지 못했을 때, 성심어머니의 집을 떠난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술집등에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산후 조리를 적절히 하지 못해 후유등을 겪고 있는 모습들을 볼 때 신 수녀는 무력감과 이 일이 주는 버거움을 느끼지만 작은 나눔들이 이어지고 생명이 버려지지 않고 갈려지는 크고작은 「기적」들 속에서 위안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성심어머니의 집을 찾는 수많은 봉사자들의 시간나눔과 노력봉사가 고맙고, 라면상자 멸치상자 휴지상자들으로 끊이지 않고 쌓이는 십시일반의 물질적 도움들 속에서도 그렇다.
신수녀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출산한 아이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사회복귀시설과 낳은 아이를 기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자모원 시설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후 학교나 사회가 돌아가 적응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 그로써는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마음이 비뚤어진채 이 시설 저 시설을 돌다 들어온 아이들이 성심 어머니의 집에서 6새월여 생활한 후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신수녀로서는 그들이 세상을 힘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새천년 신수녀가 바라는 사회는 가정에서부터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다. 가정안에서부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소중히 여겨질 때 사회 학교 세상 안에서 모두의 인권은 소중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느껴지기에, 「우리 각자의 삶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태아의 생명이 하찮게 여겨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신수녀. 성심어머니의 집을 통해 옳게 새롭게 살고자 다짐하고 사회 속으로 활기찬 발걸음을 옮기는 미혼모들의 모습속에서 신 수녀는 새 천년기에도 부족하나마 작은 세상의 「불빛」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가져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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