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의 땅 이집트·터키
“나는 너희를 친구로 불렀다”(요한 15,15).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으로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은 만인을 당신의 친구이자 형제로 부르기 위한 사랑의 결단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발걸음이 닿은 곳에는 그 사랑을 증거하는 숱한 흔적들이 생생한 오늘이 되어있다. 이슬람의 땅이면서 그리스도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집트, 터키를 향하는 길은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십자가를 발견하는, 그래서 새로운 결단으로 나서는 여정이다.
◎… 신앙적으로 가장 경건한 여정 가운데 하나인 성모 마리아의 발자취를 찾는 길이 이슬람교도들의 지역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았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했던 신앙선조들의 선택은 이처럼 이교도 속을 파고들어 그들 가운데 새로운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섭리 아래 주님의 어머니가 걸었던 길 또한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들려주는 듯하다.
◎… 이슬람의 땅 이집트에서의 첫 여정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창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알렉산드리아교회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로마교회, 안티오키아교회와 함께 당시 3대 교회로 인정받을 정도로 발전을 구가했던 알렉산드리아교회는 퇴락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았다. 시가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도교 양식의 건축물과 유적들만이 그때의 영화를 들려준다. 순례자들은 마르코 사도의 유해가 있던 성마르코기념성당(콥트 정교회)을 둘러보는 것으로 신앙선조들의 노고를 되새기며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알렉산드리아 마로니트(Maronite)성당에서 봉헌된 이슬람 땅에서의 첫 미사, 본당공동체가 생긴 후 처음으로 한국인 순례자들을 맞은 마로니트 신자들은 따뜻함이 넘치는 자신들의 성가로 반가움과 일치를 향한 형제의 정을 드러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한없이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강론의 한 부분이 순례자들의 가슴 속에 보석처럼 와 박혔다.
◎… 아기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노리는 세상의 임금으로부터 피신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의 종살이로부터 탈출해 나왔던 바로 그 땅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운명. 하지만 역사는 이것이 이집트를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들려준다. 성가정의 피난 여정을 따라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면서 이집트에 그리스도교 문화가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전승에 따르면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난 와 3주 정도 머물렀던 올드 카이로에 ‘성가정피난성당(아부 사르가)’이 세워졌다. 성가정이 시련 속에서 맺은 결실이 바로 이집트교회인 ‘콥트 교회’인 것이다.
◎… 진리를 향한 탈출의 기점이었던 이집트를 거쳐 터키로 향하는 발걸음은 자식을 잃고 먼 이국땅에까지 와 숨어 지낸 성모 마리아의 생생한 아픔과 조우하는 길, 그래서 더욱 탄식과 감동이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거대한 잔해의 도시 에페소 도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산속에 외로이 자리한 ‘성모 마리아의 집’은 수천 년 세월을 뛰어넘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는 듯했다.
마리아의 집 야외 제대에서 봉헌된 미사, 아들을 향한 성모 마리아의 오롯한 마음이 전해져와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한 자리에서는 그리스도를 향한 다짐이 넘쳐나는 듯했다.
“성모님, 세상이 어두울 때 자신을 내어던져 어둠을 밝히는 불씨, 등대로 거듭나게 해주소서.”
◎…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순례 중이던 11월 7일 주일, 크루즈 선상에서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천주교와 개신교 순례단을 이끌고 성지순례에 나선 두 종단 지도자들이 자리를 함께한 것. 최성우 신부(의정부교구 야당맑은연못본당 주임)를 비롯한 천주교 측의 초대로 마련된 자리에는 유의선 목사(순복음 한국총회), ‘CCM의 대부’로 불리는 노문환 목사, 한국기독문화예술총연합회 회장 임동진 목사 등이 함께해 교회 일치를 위한 뜻을 모아냈다. 배우 출신인 임동진 목사는 “이번 순례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불씨를 가슴에 담아 간다”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일에 함께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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