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소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우리는 수없는 송구영신을 되풀이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저 그렇게 열심히 알리고 또 달려 왔다. 못다 이룬 소망들을 아쉬워하며 올해는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정초의 각오가 다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그래도 또 새 희망을 걸곤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새해의 의미를 특별히 부여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오늘도 어제와 같은 삶의 한 과정으로 여길 뿐…. 한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는다고 해서 더 부산하고 화려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나에게는 지난해와 지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회한도 없이 외롭고 어둡고 쓸쓸한 연말을 보냈고, 또 벅찬 기대감도 없이 새해를 맞았다. 아직도 연말 연시의 그 화려한 잔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서인지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뭔가 들뜬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저 덤덤한 심정으로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지난 날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인자하신 어른들의 덕담과 교훈으로 들려주시던 말씀…. 그 말씀들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나의 사고가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 되돌아보지도 않은 채 현재의 나로 굳혀 버렸다.
나 자신이 실패할 때마다 그 이유를 내 탓이 아닌 남의 탁으로 돌려 사람들을 원망하고 세상을 증오하면서 점점 염세적인 성격이 되어 퇴보만 하고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잡념들이 뇌리를 자극하고 있어선지 전신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젊은 아가씨들을 외계인 보듯 멍청하게 쳐다보며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한 나는 「차라리 집에 가서 늘어지게 잠이나 자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잇는 곳은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산비탈에 위치한 허술한 토담집 셋방이다. 동네 어귀에 있는 가게 주인의 소유인데 어떻게 연줄이 닿아 나아게 싼값으로 빌려주어서 그런대로 편안한 나의 안식처가 된 것이다. 그 쓸쓸해 보이는 납작한 집엔 나를 반겨 주는 정다운 존재가 있다. 내 발자국 소릴 듣고 꼬릴 흔들며 콩콩 짖는 삽살개 한 마리, 반갑다고 바짓가랑이를 물고 마구 흔들어 댈 깨는 귀찮긴 하지만 언제 나 한결같은 그 녀석의 순수한 애정이 있어 그래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곤 한다.
오늘도 나는 나를 반길 삽살개의 모습을 떠올리며 호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 한닢을 끄집어내어 구멍가게에 들렀다. 넓적한 얼굴에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 편지봉투를 들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앗따! 고향에서 편지가 왔어요』
『편지요?』내게 올 편지가 없기에 의아해서 받고 보니 좀체 연락을 않은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였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금치 못했다. 아주머니가 나의 표정을 살피며 관심을 표했다.
『집배원 아저씨가 정동찬 씨, 정동찬 씨하며 찾기에 내가 전해 준다고 맡아 놨지. 뭐 반가운 소식일 테지…』하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동찬 총각이 나이가 있으니까 고향에서 장갈 보낼려나 봐…』
『웬걸료. 내가 뭐 장가 갈 주제가 되어야지요』
나는 아주머니의 호기심을 은근히 묵살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삽살개에게 줄 빵 한 봉지를 사 들고 가게문을 나섰다.
「하버지께서 웬일로 편지를 하셨을까?」궁금한 마음을 다래며 집으로 향했다. 반가워 달려드는 삽살이에게 빵을 선사하고 쪽마루에 걸터앉은 채 편지를 읽어보았다.
편지의 내용은 아버지의 성격처럼 아주 간단하였다. 돌아오는 주일날 꼭 집으로 내여와야 한다는 내용 뿐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어쩐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찬찬히 다시 읽으면서 찾은 것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표현하지 않던 아버지가 일요일을 주일로 적은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편지 말미에 있는 「죄 많은 아비로부터」라는 문구였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성격으로 「죄 많은 아비」운운은 도저히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진의와 영문을 알려고 하기보다 먼저 어떤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해서 가슴이 마꾸 위었다. 그리고 전혀 뜻밖에도 불효인 내 자신을 질책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제대 후 농촌이 무조건 싫다고 홀로 계신 아버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안겨 주고 고향을 떠난 지가 3년이 넘었고, 그 동안 아버지는 내 편지를 여러 번 받고도 답을 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보는 고향 마을은 농한기여서인지 더욱 적적하고 쓸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어렸을 때 뛰놀던 산길이며 개울이 그대로 있어 어색하고 차갑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동네 입구에 서 있는 그 옛날 장승이 「요놈, 이제야 오는 몹쓸 놈」하는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도망치듯이 지나쳐서 집에 다다랐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약탕기를 들고 나오는 한 노인과 마주쳤다. 나는 그 노인의 손에 들여 있는 약탕기와 노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네가 동찬인갑네』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 잘 왔네. 자네 아버님께서 아들 얘길 자주 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지. 난 자네 아버지와는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지. 이런, 아버지부터 뵈어야지, 어서 들어가 보게나』
나는 사연을 묻지 않고 방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방안에는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맥없이 누워 계셨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아버지께 다가갔다.
『아버지』
초점이 흐려져 있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순간 빛이 났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않고 내 손을 잡아 주셨다. 아버지의 손등에 파리한 혈관이 거친 피부 속에서 서서히 박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빠르게 방안을 둘러보았다. 소품은 내가 떠날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머리맡엔 지난 날 집안에서 볼 수 없었던 성경책과 묵주가 놓여 있고, 누렇게 바랜 벽지에 걸려 있는 은빛 십자고상이 예전과 다른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버지 어떻게 되신 거예요? 그리고 교회에는 언제부터 나가셨어요?』
손을 잡은 채 그저 내 얼굴만 쳐다보시던 아버지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그래 놀랐을 거다. 하느님을 모르고 또 외면하고 살아온 우리였는데…』
『그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거예요? 언제부터였어요?』
천천히 힘업이 들려준 아버지의 몇 마디에 나느 마치 둔기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정신이 아찔해지며 현기증을 일으키고 말았다.
위암 말기라는 것이었다. 이 천년 새봄에 피는 꽃은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온갖 가난과 천대와 수모를 받으며 인생의 가시밭길을 탄식하며 살아오신 아버지, 아버지 역시 세상을 저주하고 인륜마저 부정하며 자식까지 포기한 후에는 스스로를 인간 쓰레기로 자학하며 세월을 보내셨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이웃에 한 노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아버지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 농촌 생활을 시작한 어른 -약탕기를 들고서 나와 만났던 노인-은 이웃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서슴지 않는 성격이어서 곁에서 본 아버지가 감동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위암 말기의 고통도 주님께 의지하며 그 고통을 생전에 지은 죄의 보속으로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동찬아, 내가 저주해 온 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임을 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래도 저 세상으로 갔더라면 어떡할 뻔했니? 생각만 해도 캄캄하고 아찔하다. 늦게라도 이를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이 얼마나 고마우신지…』감사함으로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시는 아버지, 고통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난생 처음 울먹이며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방에서 나와 그간 아버지가 일구어 놓으신 논밭이며 외양간을 둘러보았다. 외양간에는 볏짚만 군데군데 나뒹굴고 있을 뿐 응당 있어야 할 새김질하는 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나약하고 쓸쓸한 모습이 그안에서도 보여졌다. 자꾸만 아버지의 편지에서 본 「죄많은 아비」란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약간 떨리는 소리로 물어보았다.
『아버지! 왜 저에게 「죄 많은 아비」라고 하셨지요?』
아버지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 후 아버지는 기도하듯 숙연하고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 뿐인, 내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내쳤다. 아들이 방황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모른 채 했고, 또 나는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얻어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면서 너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니 이 아비가 죄인 중의 죄인이다』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씻을 생각도 않고 나는 아버지의 두 손을 잡으며 아버지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버지! 아버진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전 지금부터 이 곳에 살면서 두 분의 아버지를 섬기기로 했으니까요』
『두 아버지…?』
『네 아버지와 하느님 아버지요』
내 말을 들은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희열이 넘쳐나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 큰 선물을 받은 감격을 맛보고 있었다. 그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우리 부자를 내려다보심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