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는 삶의 기쁨에 넓게 개방되어 있는 성인들 중에서도 특출한 인물이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화해를 통한 우주적 형제애를 이루면서 진정으로 자유인이 되었다.
흔히 포기 또는 빼앗김이라는 부정적 색채를 띠었던 수덕주의도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포기한 것에 대한 「기쁜 극복」이란 적극적 측면으로 바뀌었다. 그의 생활은 뭔가 빼앗긴 삶이 아닌 기쁜 봉헌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사물들로부터 소유됨 없이 그리고 소유함 없이 단순성과 사랑의 눈으로 그것들을 직관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그의 영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겸손-가난의 자매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가난은 모든 점에서 인간과 똑같은 신분을 취하신 그분의 낮춤과 겸손하심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는 이 두 요소를 함께 연결시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제1회칙 9 제2회칙 6 10)이라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 중 그분의 자기 낮춤과 겸손을 드러내는 가난을 무엇보다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의 신비에서 발견한다.
그에게 있어서 겸손은 내적인 가난, 마음의 가난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참된 겸손이란 억지로 자기 자신을 낮추려 하는 행동에 있지 않고 단순하게 진리 앞에 서서 하느님이 보시는 대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권고 19항 참조).
가난 자체도 소유 대상으로 삼을 때 교만으로 변한다. 프란치스코는 한 때 그의 수도회를 「작은 가난한 자들의 회」라고 부르려 했지만, 교만의 위험을 피하고 가난을 더 잘 보장하기 위하여 「작은 형제회」라고 하였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mitas)의 기초 위에 「작은 형제애」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작음」의 구성요소는 가난과 겸손이며, 「형제애」의 구성요소는 사랑과 순종이다. 작음은 가난과 겸손 위에 세워져 있는 복음적 마음가짐이다(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 2,11-12 참조). 가난과 작음은 무엇보다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마땅한 자세이다.
단순성-가난한 이의 지혜
단순성이란 우매함이나 무식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한 이의 지혜이고 겸손과 같은 차원의 덕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다. 겸손이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내면적 자세라면 단순성은 자기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행동이다. 단순성은 이중성과 반대되며 하느님을 직관하는 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본성이며 그분과 일치하는 기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단순성과 지혜가 같이 있을 때 형제들의 공동생활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었다.
그는 참으로 단순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자신의 실생활과 약점에 대하여 아무 것도 숨기려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단순성이 천성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자세로 사는 그에게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기쁨-가난의 열매
성인은 하느님의 종의 또 하나의 근본 자세는 기쁨을 간직하는 것이라 가르친다. 이것은 구원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참 기쁨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 가능한 것이므로 그것을 하느님께 청하여 얻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므로 복음적 가난을 사는 작은 형제들은 슬퍼하거나 음울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지버하고 명랑하며 쾌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래서 형제들은 나병환자들이나 걸인들과 함께 지낼 쌔 기뻐해야 하며 동냥을 청하는 일을 기뻐해야 한다. 가난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기쁨과 더불어 가난이 있는 곳에 탐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권고 27,3 참조). 결국 기쁨없는 가난은 참된 의미에서 복음적 가난이라 할 수 없다. 그레게 가난은 기쁨 속의 가난이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고통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주 고통으로 정화되고 양육되는 것이다.
순종-내적 가난의 극치
가난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프란치스코의 생활 전부이다. 사랑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 「순종의 생활」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성부께 대한 순종의 삶으로 이해하였으며 육화와 죽음은 그 증거이고 그분의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
그에게 순종은 수도원의 규칙이나 요구나 공동 생활의 질서를 위한 조건이기에 앞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회개 생활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그에게 순종의 일차적 동기는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사랑의 선물을 바치는 데 있다. 성령께 마음을 열어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려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순종생활을 받아드여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수도회에 입회자를 받아들인다는 말을 「순명생활로 받아들인다」라고 표현한다.
프란치스코의 순종 개념의 핵심은 거룩한 자유이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 순종과 자유 두 요소는 사랑을 목적으로 할 때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순종과 가난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에 의하면 순종이란 내적 가난의 불가피한 요소이며 그 극치이다. 재물을 포기하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권고 3,3-2 참조).
형제애 : 가난한 이의 사랑
프란치스코에게 모든 인간은 직책이나 신분 차별 없이 서로 형제 자매이다. 또한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대자연 현상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는 소중한 형제 자매들이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열려있는 우주적 형제애를 실천하였다. 그에게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표지들이며,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도구들이다.
성인의 형제애는 우선 그의 작은 형제회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모든 이들을 위한 형제들이 되기 위해서는 형제회 안에서 상호간의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에게 있어서 형제들은 다른 형제들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다(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유헌 14 참조). 그들의 형제애는 세상을 향한 형제적 관계로 이어진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직접 함께 생활하는 형제애를 추구했다. 그것은 가난하셨고 나그네이셨던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따르는 것이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의 형제애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방인들과 이단자들도 포함했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들을 대하며 관계를 맺었다.
프란치스코 만큼 대자연 앞에서 그토록 깊은 감수성을 드러낸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형제애는 인간의 차원을 넘어 모든 피조물, 무기물까지 포함하여 관계를 맺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경관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 그리고 사랑을 드러낸느 모습과 색채들의 축제이다. 그는 모든 존재들과 섬세한 애정으로 관계를 이루었으며 이성없는 동물까지도 자신들을 향한 그의 애정을 느끼며 놀라운 형제애의 관계를 이룰 수 있었다.
인간이 행해온 자연에 대한 온갖 훼손과 파괴로 인하여 오늘 인간 스스로가 크게 위협을 받으며 큰 우려 중에 자연 환경보존과 회복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긴급한 과제 앞에 놓인 우리에게 인간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우주적 형제애를 강조하고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가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환경보호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1979년 11월 29일)된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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