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 서울 대형약국의 촉망받는 처녀 약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수많은 이들의 축복속에 백년가약을 맺어 화제를 낳았다.
1월 16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민회관은 지난해 3·1절 특사로 출소한 신랑 양희철(65)씨와 그보다 31살 연하의 신부 김용심(34)씨 부부의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먼저 출소한 선후배 장기수들과 민주화운동 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이날 결혼식은 그러나 두 사람만의 장이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 아픔을 안겨준 이와 아픔을 당한 이, 보수와 진보…. 쉽게 화합하기 힘든 대립항들의 용서와 새로남의 장이었다.
얘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빠져들고 마는 소년같은 풍모의 양씨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누구 못지 않게 살아온 김씨, 두 부부의 사랑은 그러나 첫눈에 반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62년 월북했다 돌아와 간첩혐의로 체포된 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던 양씨와 경희대 약대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약사로 일하는 등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김씨, 두 사람의 만남은 편지를 통해 이어져오다 지난해 양씨의 출소 후 사랑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분단된 조국의 어제와 오늘의 만남이라 할 두 사람은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새천년 통일된 조국을 향한 희망으로 털어놓는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이영우 신부)가 지난해 서울 봉천7동에 마련한 「우리탕제원」에서 다른 동료장기수들과 지내오다 탕제원 근처에 조그만 보금자리를 마련한 양씨, 밤이고 새벽이고 아픈 이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마음에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운전면허를 딴 그는 『늦은 출발이지만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 나가겠다』는 말로 신혼의 첫출발을 알렸다.
우리탕제원 (02)888-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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