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의 세계와 영혼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중국선비의 생각에 질문이 떠오른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불멸성을 지니며 살아 있는 사람의 능력을 월등히 초월하는가? 춘추전(春秋傳)의 기록에 의하면, 정(鄭) 나라의 백유(伯有)가 죽은 뒤에 여(勵)라는 귀신이 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죽음 이후 영혼은 형체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질문에 직답을 피하면서 리치는 오히려 백유(伯有)의 예에서 춘추(春秋) 시대에도 혼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죽음이 곧 혼(魂)의 소멸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죽음은 오직 백(魄)이 사라지는 것이고 육신이 소멸하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영혼(靈魂)은 육신의 감옥에 갇혀 있을 뿐, 죽음은 영혼에게 해방이다. 군자는 이러함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흉하거나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쁘고 편안하게 여기기 때문에 영혼이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긴다.(君子知其然, 不以死爲凶 而欣然安之, 爲之歸于本鄕) (IV-3) 창조주 하느님은 창조계의 모든 존재에게 제 자리를 주시고 질서를 확립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영혼은 사람이 죽게 되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리학(性理學)에 의하면, 사람의 정신이나 혼은 기(氣)의 일종이니 음양이기(陰陽二氣)의 기운이 응축된 것이다. 그러나 리치는 성리학의 영기론(靈氣論)을 반대하며 단호하게 말한다. 귀신들에게 제사 지낸 적은 있었지만, 기(氣)에게 제사 지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有祭鬼神者矣未聞有祭氣者)(IV-4) 귀신이 ‘만물을 몸으로 삼으니 아무것도 빠뜨릴 수 없다(體物而不可遺)’(中庸, 16장)는 말은 귀신의 능력이 성대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따라서 리치의 주장은 인간의 영혼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근거한 존재론에 의해 설명되지 않음을 확인할 뿐이다. 귀신과 기(氣)는 관념상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리치의 주장인 것이다. 리치는 그 대신에 고대 헬라철학을 수용한 체계를 적용하여 영혼의 수월성을 제시한다.
영혼의 수월성은 다른 사물 존재나 귀신과 분명히 다를 터인데, 기(氣), 물(物), 영혼(靈魂)의 본질적 차이를 분류방식이 있는가? 리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범주론에 의거하여 실체와 속성 개념을 바탕으로 만물을 9종류(九宗)로 분류하는 도표를 제시한다(物宗類圖).(IV-5) 여기서 도표가 가리키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이외의 사물 존재는 각기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리치는 여러 기준을 설정하여 존재하는 것들을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옳고 그름, 길고 짧음, 크고 작음 등 인간의 가치나 외형에서 비롯되는 요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존재자의 내재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은 이런 분류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오직 내재적 본성을 가리키는 ‘있음(有)과 없음(無)’만이 서로 다른 부류들로 변별할 수 있다. 리치는 아주 장황하게 이 점에 대해 긴 논의를 시도하지만(IV-5), 요점은 간단하다. 새나 짐승들은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이성적 의지(靈志)’의 인간은 행동의 이유를 알며, 일을 시행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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