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백년과 새 천년이 밝았다. 이에 즈음하여 새 천년을 전망하는 여러 의견들이 각 분야에서 제시되었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새 천년을 전망하는 시도가 당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천년이란연대의 양과 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백년의 시간에 대해서도 판단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체험하게될 앞으로의 20여 년 정도의 기간만을 상정하면서 새 백년과 새 천년에 한국교회에 바란다는 큰 제옥의 글에 소박한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교회가 지향했던 목표는 민족의 복음화와 민족사회에 대한 지속적 봉사이다. 민족사회에 대한 봉사도 사실은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일환이다. 따라서 한구교회가 추구하는 최대의 목표는 민족의 복음화에 있다. 이를 통해서 한국교회는 인류의 복음화 내지 인간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상실한다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속할 수 없다.
교회가 지향하는 이 목적을 수행해 나가야 할 인물들은 하느님 백성 모두이다. 오늘날의 교회관에서는 교회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다. 미래교회의 중심축으로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안의 모든 계층이 망라될 것이다. 이와 같은「평범한」사실에 입각하면서, 새 천년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중심축도 이들 하느님 백성들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전망의 조건
새 천년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대내적 조건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대내적 조건 가운데는 발전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과 함께 그 성장을 저지하는 요소에 대한 비판적 검토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여건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현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우리는 첫번째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발전의 가능성부터 검토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남한지역을 중심으로 400여만 명의 신자들이 있다. 이는 남한 인구의 8.12%에 이르는 비율이다. 그런데 해방 전후 한국교회의 신자수는 18여만 명에 이르렀고 남북한 전체 인구 중 0.71%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한국교회는 대단한 성장의 저력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성장의 원인 중에는 지난 날의 순교 체험과, 이 전통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으려는 하느님 백성들의 헌신적 노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새천년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또한 응집력이 강한 신자집단은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갔다. 한국인의 평균수치를 상회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지적 수준과 경제력은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잠재력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황에 대한 두번째의 경향으로는 부정적 측면들도 동시에 지적되고 있다. 최근 진행된 일련의 연구결과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지적하고 있다. 즉 현대 한국교회는 냉담자의 증가 및 영세자의 감소 등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회가 세속의 축소판처럼 바뀌어 가며, 영성생활의 활기가 상실되고 사도직 단체는 친목단체화하는 경향을 그러내고 있다. 교회 전반에 걸친 속화(俗化) 현상에 신도들의 실밍이 증대되어 가고 있다. 교회의 중산층화와 교회 내 빈부 격차의 심화 문제에 관한 우려가 제시되기도 했다.
한편, 새 천년 한국교회를 전망하기 위한 세번째의 대내적 조건으로는 한국교회가 터전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세계의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들 수 있다. 한국은 동서냉전의 결과로 오랫동안 걸쳐 분단시대를 살아왔다. 동서냉전이 극복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남북한 사회는 모두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증대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더욱이 남한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고 있다. 동시에 한국은 세계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한편, 새 천년 한국교회를 전망하기 위한 대외적 요청 가운데 첫번째의 것으로는 지역교회에 대한 보편교회의 기대를 들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제삼천년기」및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명」을 비롯한 각종 회칙을 발표했다. 이 회칙에서는 21세기를 전망하면서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보편교회가 지역교회에 대해서 기대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기초로 한 「사랑의 문화」를 한국교회도 건설해 나가야 한다.
또한 대외적 요청 가운데 두번째는 교황청이나 이웃 나라의 교회가 한국교회에 대해서 요망한 구체적 사항을 들어야 한다. 이제 제1세계에 속했던 지역의 교회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경이적」시각으로 바라보며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를 비롯하여 제3세계 지역의 교회에서도 한국교회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교회가 북한과 중국 선교를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탁한 바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조건 및 이러한 대외적 요구를 감안하면서 새 천년 한국교회에 대한 바램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과제
새 천년 한국교회는 첫째로 민족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의 문화」를 이 땅에 건설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우선 신앙의 쇄신과 내적 성숙을 위해서 더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구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일종의 신앙적 위기가 영성적 갈증은 이를 통해서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쇄신된 영성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이웃에 전파하고자하는 체계적 노력이 전망된다.
한국교회는 직접 선교활동의 지속적 강화와 더불어 수도생활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교회 학문의 발전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서 한국인에게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의미를 일깨우고,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미래의 한국교회에서는 사목자 뿐만 아니라 신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기대된다.
한국교회는 19세기의 순교를 통해서 「피의 체험」을 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기 인권운동 등을 통해서 「참여의 체험」을 자신의 역사에 추가했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이 두 체험을 자산으로 하여 자신의 신앙 전통을 밝히고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그침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교회는 많은 냉담자들을 재교육하고 그들을 활동적 신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본당 단위 뿐만 아니라 교구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도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두루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회에 관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유능한 평신도들이 전문적으로 양성되고 그들의 신분과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봉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새 천년의 한국교회도 외적성정이나 신자수의 증가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말고 교회는 민족의 보편적 구원을 위해서 더 큰 사랑을 다짐애햐 한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자선운동의 개념을 확장하여 인간개발의 차원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을 강화할 수 있다. 사회정의와 사회복지를 위한 투신은 생명운동·환경운동 그리고 도농(都農) 연계운동으로 더욱 힘차게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셋째,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문화의 복음화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며, 복음화 민족문화의 융화를 논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는 토착화에 관한 연구와 실천을 좀더 조직적으로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토착화는 과거의 종교사상에 대한 연구와 병행하여 문화전반과 현대 사회에서의 실천에 관한 문제이다. 이를 확인하면서 그 연구에 박차를 가해나갈 때 한국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은 구체적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한국교회는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에 관해서 좀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대화문제를 협의할 상위의 기관은 있으나 이를 실천하는 하위의 기관은 착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며, 그 대화의 정신이 교회 구성원 전반에 파급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대화가 현대 교회의 본질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이를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대화를 통해서 한국천주교회는 자신의 활동영역과 시각을 넓히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째로 한국교회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교회의 가르침과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천을 위해서 한국교회는 국내의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해서도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 노동자, 회교권이나 다른 그리스도교 국가 출신 노동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계속해서 요청되고 있다.
여섯째로 한국교회는 겨레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9세기 선교신학의 유산인 정복론적 선교관을 극복하고, 평화교육 내지는 민족화해교육의 시급성을 확인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민족의 복음화와 보편적 구원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사항이다. 이를 위한 배전의 놀겨이 오늘과 내일의 교회에 요청되고 있다.
일곱째로 현대의 한국교회는 자신의 선교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최소한 아시아 지역의 교회에 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본질이 선교에 있다면, 우리는 중국의 선교에 대한 본격적 관심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앞으로 20여년 동안 한국교회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 모두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상과 같은 노력을 합심하여 전개한다면 한국교회는 새 백년과 새 천년의 기초를 튼실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교회는 민족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문화」가 한국과 세상에 수립되는 데에 응분의 책임을 가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 책임을 자각할 때 우리 앞에 전개될 새 천년이란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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