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1970년 10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의 박사」로 선언되었다. 아무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읽기와 쓰기조차 뒤늦은 성년에 이르러 독학으로 터득한 그녀가 더구나 성서 주석이나 신학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토록 출중한 학자로 인정되어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겨우 33년(1347-1380)이란 짧은 생애를 살았으며 평신도로서 그리고 시대 한계 조건인 여성으로서 활동한 가타리나가 어떻게 당시 유럽의 도시 국가들의 지도자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 뿐 아니라 사회의 온갖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일에 관여하며 영향을 미쳐 그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시대에 요청되던 특별한 카리스마를 받은 성령의 도구로서 그분의 이끄심에 순응하면서 이룬 결실이 아니겠는가?
성녀가 교회와 사회에 기여하면서 산 생애와 은총 안에서 가꾼 영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가타리나는 1347년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양모 염색업자였던 아버지 야고버 베닌카사와 어머니 라파 피아첸티 사이에서 스물다섯 명의 자녀 가운데 스물 네 번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이 때부터 쾌활하고 사교적이었으며 신심에 있어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기를 지냈다. 그리고 그녀는 일찍이 하느님께서 그녀를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신다는 소명의식을 가졌다. 그녀의 뒷날 지도신부에 의하면 그녀가 겨울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린아이로서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닫진 못했을 지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며 동정 서원을 하였다. 가타리나의 가족이 살던 집 뒷동산에 교육과 설교의 중심지인 도미니코회 수도원과 성당이 자리잡고 있어 그녀는 그곳을 자주 찾아가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가타리나가 어린시절에 그녀의 집에서 성장기를 지내고 도미니코회 수도자가 된 사촌오빠 토마스 델라폰테의 영향도 컸을 것임에 틀림없다. 토마스는 나중에 그녀의 첫 번째 고해사제 겸 영적 지도자로서 영적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가타리나는 1365년 18세에 여성 평신도들로서 도미니코 3회원들의 단체인 만텔라테회에 입회하였다. 그 단체의 여인들은 수도복을 착용했지만 각기 자기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원장과 도미니코 수도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고아, 가난한 이들, 병자들 등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였다. 결혼하지 않고 봉사생활을 하고자 마음먹었던 가타리나가 반대하던 가족들을 설득시켜 마침내 허락을 받아 들어간 곳이 이 만켈라테회였다. 입회 후 3년간 그녀는 사회와 격리되어 엄격한 침묵과 기도 중에 관상생활을 하였다. 그녀가 글읽기를 터득한 것도 고독과 침묵으로 지내던 이 시기에 이루어졋다. 그녀의 독거생활은 1368년 그리스도와의 「신비의 약혼식」을 가짐으로써 절정을 이루었다. 그후 그녀는 주님의부르심에 더욱 확신적으로 응답으로 만텔라테회 자매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 나환자들을 위한 봉사에 적극 투신하였다.
1374년 5월부터 10월까지 시에나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흑사병으로 황폐화되었다. 대부분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전염의 위험성을 피해 도시를 떠났지만 가타리나는 소수의 수도자들, 만텔라테 회원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가타리나의 그러한 놀라운 사랑과 용기 그리고 헌신적 봉사에 대한 소문은 여러 도시로 금방 퍼져나갔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가타리나의 헌신적 사회구조 활동은 점점 그녀의 명망을 높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였으며 그녀는 그들과 대화를 통해 배우기도 했고 가르치기도 했다. 배운 것은 성서주석과 신학적 논리였으며 가르친 것은 자신이 하느님과의 내적 만남을 통해 체험하고 터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그녀의 침묵과 관상생활을 소홀히 하도록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관생생활로부터 활동적인 사도직이 성장해 나왔고 활력을 얻었다.
1370년부터 1374년 사이에 시에나에서 가타리나의 권고를 통하여 잘못 살고 있던 이들 뿐 아니라 교만한 지식인들 등 헤아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다. 그녀의 권위있는 타이름과 사랑 담긴 조언은 적개적인 파벌들이 화해하도록 했으며 악명 높은 죄수들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가타리나에게 이끌리었던 이유는 단지 그녀의 호감적 소탈한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 그분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또한 3년간 그녀의 작은 방에서 은수 생활을 하면서 받게된 말씀의 은총 때문이었다. 그녀의 설교 뿐 아니라 대화 중에 정겹고 신념에 찬 그녀의 말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매력을 지녔었는지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들도 친구나 제자로 함께 있고 싶어앴고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려 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가타리나는 성지탈환을 위한 십자군 조직의 주창자 및 중재자로서 폭넓은 활동을 했으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간의 화해, 로마와 도시 국가들 사이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그리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도시 저 도시로 두루 다니며 평화의 사절 역할을 하였다. 좌절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큰 장애를 겪고 힘든 방해들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인내로이 그리고 용기 있게 극복하여 결국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아비뇽에서 로마로 돌아오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교황은 1376년 9월 13일 가타리나와의 로마 귀한 약속을 이행하면서 아비뇽을 떠났다.
가타리나는 교회의 개혁과 성직자들의 쇄신을위하여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교황과 추기경들을 만났고 편지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호소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녀는 경건한 사람들을 모아 로마에서 교황을 지지하고 교회의 개혁을 중재할 「교황청 평의회」를 조직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시도는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가타리나가 교황과 추기경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친구들,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 가운데 오늘날 남아있는 것만도 400여 편이나 된다. 이러한 서신일체를 염두에 두고 1377년부터 두 해에 걸쳐 「하느님의 섭리에 관한 책」이라고도 불리는 「대화」를 썼다. 그녀의 인품과 성장과정 그리고 인간관계를 선명하게 알려주는 자료가 그녀의 편지들이라면, 저서 「대화」는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받은 내용과 제자들에게 가르친 영성을 담은 역작이며 유산이다. 그녀가 쓰기를 배우기 전에 구술하여 다른 사람드이 적도록 하였다.
1380년 초부터 가타리나는 음식을 섭취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교회와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편지를 통해 교회의 쇄신과 화해 등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촉구하였으며 기도와 희생을 통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탈진되기 직전까지 1마일이나 되는 성 베드로 성당에 가서 매일 아침 미사 때부터 저녁 마지막 기도때까지 교회분열의 종식과 쇄신 그리고 일치를 위해 온종일 기도하면서 머물렀다. 가타리나는 4월 29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리스도의 성혈의 자비를 청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가타라나는 1461년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39년에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주보 성인으로 공인되었다. 그리고 1970년 10월 4일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의 박사」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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