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으면서도 열정적인 활동으로 일관된 가타리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녀에게 관상이 끼여들 틈이 어디 있겠는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에 함께 있던 이들에 의하면 그녀에게 관상적·신비적 체험이 없었다면 그 같은 활동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단언한다. 그들은 그녀가 관상 중에 체험한 것은 곧 행동으로 몰아가는 원동력이었으며 또한 활동하면서 만나고 겪은 것 모두는 기도 속에 현존하였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가타리나는 「사회적 신비가」또는 「신비적 활동가」라고 불린다.
2.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가타리나는 교회가 역사 안에서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수여한 33명 중 하나이다. 그 가운데 여성은 셋 인데, 그들은 최근에 선언된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1997.10.19)와 아빌라의 데레사 그리고 가타리나이다. 가타리나의 영적 증언집인 「대화」와 전해지는 400여편의 편지들은 그녀가 교회의 권위 있는 영적 저술가들, 신비가들의 대열에 들어있음을 드러내 준다. 그녀의 글은 신학적으로 체계화되었거나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 신학과 영성적 가르침들을 자신 안에 흡수하고 소화시켜 통합적 지식과 영성을 형성하여 그것을 신선하고 생동감있게 표현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들이 사소하고 미묘한 부분들까지 틀림없이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읽기를 깨친 때가 스무 살의 나이였으며 쓰기를 배운 것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서른 살 때의 일이었으니 그토록 수준 높은 신학과 깊은 영적 지식을 언제 어떻게 갖출 수 있었을까?
그녀는 사제, 수도자들과 대화하면서 부지런히 성서주석과 신학 이론을 배웠다. 그러나 그보다 하느님과의 내적인 만남과 긴밀한 사랑의 대화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를 깊이 체험하면서 터득했던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아버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하며 연구하는 이론가 아들보다 그분들 가까이 모시고 사랑하는 효자가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시 사회와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 극히 한계적 여건인 평신도로서 더구나 여성으로서 가타리나는 설교, 쇄신의 촉구, 화해의 중재의 도구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순응하였다. 그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 있어 처음엔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망설이기도 했으나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그분께 위탁한 마리아처럼(우가 1,38 참조), 하느님의 뜻이 그녀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독단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녀를 감싸주시는 사랑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기를 배워나갔다. 그녀는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무슨 일이든지 용감히 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은 그녀를 하느님께 더욱 위탁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활동업무가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분노하였으며 실로 저항하고 방해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의 영적 지도신부였던 라이몬드는 하느님께서 가타리나를 부르신 것이 교회의 남자들에게 시대적 표지로서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배우지 못한 사도들을 보내어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당황하게 하셨듯이 이제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한 여자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타리나의 교회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교황에 대한 자녀다운 효심은 교회가 온통 혼란스럽고 세속화 되어있던 상황이었지만, 비판적 관망이나 절망적인 자세가 아닌 희망과 긍정적 전망 중에 기도하면서 쇄신과 화해를 위한 중재에 지칠 줄 모르게 투신하도록 한다.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아비뇽에서 로마로 귀환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데 있어서도 가타리나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교황은 사도좌가 있는 로마로의 귀환을 용기부족으로 결단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가타리나가 하느님의 뜻을 상기시키며 그를 신념있게 고무시킴으로써 용단을 내리게 되었다고 그의 일기장에서도 기술하고 있다.
가타리나는 수도회 개혁에도 기여하였다. 그녀가 살았던 때는 교회와 사회 뿐 아니라 그녀가 속해 있던 도미니코회 등 모두가 혼란 상태에 있었다. 당시는 또한 신비주의가 발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마이스타 에카르트 등 도미니코회 동료들이 사변에 심취되었던 데 비해 가타리나는 실천을 중요시하는 영성을 살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 또한 가타리나는 영적 지도자이던 카푸아의 라이몬드 신부에게 깊은 영향을 줌으로써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결과적으로 도미니코회의 개혁을 지속하도록 마련하였다.
3. 가타리나의 영성
「대화」와 편지들 안에 나타나는 가타리나의 영적 가르침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지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녀의 영적 가르침은 매우 교의적이며 스콜라 신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녀는 성삼위의 흠숭자이고 그리스도께 대한 그녀의 신심은 특히 인류의 구원을 위해 흘리신 성혈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그녀는 영적 사부인 성 도미니코처럼 사도적 관상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영적 가르침 중 사랑의 세 단계와 신비적 일치에 대해 개관하기로 한다.
3.1 사랑의 세 단계
가타리나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장 과정으로 사랑의 세 단계를 서술한다.
첫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이기적으로 사랑한다. 비굴한 사랑이다. 자신이 지은 죄로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중에 살고 있다. 둘째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 사람들을 이기심 없이 친구로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원한 상급에 대한 희망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아직 보상을 바라는 사랑이다. 셋째 단계에서는 우리는 완전한 사랑의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위탁한다. 하느님과의 일치의 사랑으로 효경의 사랑이다.
3.2 신비적 합일
가타리나가 서술하는 신비적 합일은 성화은총을 통한 하느님과의 단순한 일치가 아닌 영혼 안의 하느님 현존의 체험과 인식이다. 그녀는 신비적 합일을 표현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의 표상들을 사용한다. 요한 14,21~23의 말씀은 그녀에게 신비적 합일의 핵심인 사랑, 인간의 이기심을 치유하고 하느님의 뜻을 입게 하는 친밀한 사랑의 상징을 보여준다. 가타리나는 신비적 합일에 이르는 정화과정을 용광로에 던져진 석탄에 비유한다.
하느님의 사랑의 불 속에서 우리는 불타는 석탄과 같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이 붙어있기에 하느님 외에는 우리 의지에서 전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신비적 합일은 또한 물이 물고기를 둘러싸고 품어 안으면서 바로 물고기의 생명이 되듯이 하느님은 우리를 결코 떠날 수 없는 집이 되신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수록 성령의 사랑은 우리의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치유시키므로 처음에는 그렇게도 어렵던 이 길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감미롭고 매력적인 것이 된다. 가타리나는 요한 15,15의 말씀이 진리임을 직접 체험한다. 신비적 합일은 우리에게 종으로서의 사랑을 넘어 하느님께서 비밀을 남겨 두시지 않는 가까운 친구의 사랑에 이르게 한다. 신비적 합일에 대한 그녀의 가장 직접적인 상징은 부모의 품에 안겨서 그 입맞춤을 받으며 평화 속에 쉬고 있는 어린 아이로 표현된다.
신비적 합일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취하게 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불타게 하므로 우리는 하느님 뿐 나리아 하느님의 자녀들인 형제 자매들과 친밀한 일치를 체험하게 된다. 가타리나는 세상의 구원에 대한 열정과 분리된 신비적 합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느님께는 되돌려드릴 수 없는 그 무상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도록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 하느님과의 친교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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