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4) 사도 성요한
⑪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
빵의 기적에서 이미 성체성사가 예시되어 있지만 공관복음서와의 차이점은 요한 복음에는 성체성사 제정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대신 발을 씻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인들의 정결(淨潔) 예식이 아니다. 스승이요 주님이신 그분이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기셨으니 이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13,12). 그분을 추종하는 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버리며 사랑을 실천하신 주님의 그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5). 교회는 성 목요일 저녁에 사제가 발을 씻어주는 의식을 거행한다. 형식적인 의례가 아니라 여기에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토매가 겸손과 사랑에 있음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성체는 먹힌다. 이보다 더 큰 겸손과 자기 증여(贈與)와 비하가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겸손과 자기 비하와 온전히 자기를 내주는 사랑의 행위로써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 진정으로 성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⑪ 예수의 떠남과 성령의 강림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생수」라는 말을 쓰셨다. 물이 귀한 팔레스티나에서는 썩은 물이 아니라 싱싱한 물, 즉 「생수」는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대단히 힘있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성령의 상징은 물, 불, 바람이다. 특히 물은 새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7,38 참조. 이사 55,1~11). 물은 대지를 살아있게 하고 푸르게 한다. 그러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도 그러하다. 즉 죄로 인한 죽음에서 해방되어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성령을 주려 하신다. 믿는자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여 충만한 삶으로 채워 주시는 그 성령을 주시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 받으신 다음 그 능력의 성령이 임하실 것이다.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16,7). 그러면 성령은 무엇을 하실까?
성령은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주실 것이고 이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16,8~11)을 분명히 하실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협조자(빠라끌레또스)로서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시며 증거하신다.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제자들은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님을 증거해였다.
⑬ 사랑의 계명
긴 고별사에서 제시된 큰 교훈은 사랑(아가페)의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임종을 맞이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하는 마지막 당부인 유언처럼 느껴진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그분은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분과 함께 지낸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해당된다.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 사랑은 위대한 설교나 논문보다도 더 힘이 있다. 예수는 좋아도 예수쟁이들은 싫다고 하는 외교인들을 볼 때 우리 교회가 참다운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기초를 물, 불, 공기, 흙 네 원소로 보았는데 다섯번째 원소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원하는 것으로서 분명히 사랑이다. 사랑이 만물의 원리인 것이다. 사랑만이 이 부조리한 세상을 하느님께서 월하시는 세상이 되게 할 수 있다.
⑭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길, 진리, 생명을 여러 번 말씀하신 예수님은 고별사에서 자신의 신원을 이런 식으로 밝히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14,6). 인간이 가야할 마지막 점. 그 종점은 하느님께 대한 인식과 지식이며, 그것은 영원한 행복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거기에 이를 수 없다. 하느님은 인간이 가려고 하는 본고향이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가는 그 길이 되신다.
올바른 길을 통하여 거기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지막 행복과 완성은 그분 안에서 찾아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이 참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잡이가 되신다. 예수님은 인간의 목적이자 그 곳에 이르는 유일한 길잡이이시므로 그분은 인생 여정에 있어서 언제나 사람들과 가까운 분이시다.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5,39)는 말씀에서도 그분이 길이요 진리이시라는 면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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