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재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도 언제나 보편적 목적을 지닌다.”(간추린 사회교리 328) “분별없이 자기가 가진 재화를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은 그 재화에 예속되고 그 노예가 되어 버린다.”(간추린 사회교리 181)
신앙인이라면 교회의 가르침을 응당 따라야 하지만 가르침 대로 실천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가르침에 충실할 때 진리의 빛을 밝힐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매번 욕심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과연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새해를 맞아 돈의 올바른 이해와 사용 방법을 듣고자 2008년 개인 기부자로서는 사상 최대 금액인 578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류근철(루카·84·대전 궁동본당) 카이스트 초빙 특훈교수를 26일 대전 궁동성당(주임 김영근 신부)에서 만났다. 류 교수는 최근 개신교에서 가톨릭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다음은 류 교수와의 일문 일답.
▲ 2년 전 사상 최대 금액을 기부하셔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셨습니다. 기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단지 때가 맞아 평소에 생각하고 마음속에 간직했던 것을 실천한 것이죠. 기부를 하면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가서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기부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한다면 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보편적 목적을 실현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남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것은 함께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라고 주신 것이죠.
▲ 사실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 전재산을 기부한다니까 반대가 많았습니다. 저보고 미쳤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나중에 자식들에게 원망을 듣게 될 거라는 말도 했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죠. 그래도 꿋꿋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늘 거지들이 찾아오면 한 번도 그냥 보내신 적이 없으셨어요. 당신이 한 끼 굶고서라도 밥을 주시곤 하셨죠.
▲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자수성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 가난은 어떤 의미입니까.
-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 때는 하루 두 끼를 굶으며 공부했었죠. 가난했지만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 니가 나중에 의사가 될 사람이니 지금 이런 가난을 겪어봐야 나중에 가난한 환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겠어. 좋은 경험을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제가 직접 가난을 겪어보니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고 헤아릴 수 있었던 같아요. 가난은 이웃과 함께해야 함을 가르쳐 준 것이지요. 치료해준 환자가 병원비를 떼먹고 도망간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도 ‘그래. 니가 베풀만한 심성이 못되니 이런 기회를 통해 남을 도울 수 있게 해주신거야’라고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이런 경험들이 재산, 재능을 나누는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든 것 같습니다.
▲ 돈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대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돈을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 돈은 귀신이 붙어 있어 노여움을 잘 탑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잘 사용하지 못하면 힘든 일이 많아집니다. 기부를 하고 나니 근심이 없어져서 아픈 곳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은 것은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벌었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가 도와줬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만큼 남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부하는 것은 마치 딸을 잘 키워 시집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행복이 더 커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더 큰 행복이 찾아오잖아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갖고 있는 것보다 좋은 곳에 사용하면 그만큼 행복이 더 커지는 법이죠. 돈이 많고 적음은 큰 문제가 아니에요.
▲ 최근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으며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셨습니다. 천주교에 입교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 궁극적으로 가장 믿을 수 있고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아껴 주는 종교가 천주교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과거 장인 장모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에요. 당시 어려운 일이 많았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축복해줬습니다. 한평생 의사로 살아오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어요. 이때부터 언젠가는 천주교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이 꿈이 최근 실현된 거죠. 성당을 다니고부터는 신기하게 외로움이 없어졌어요. 제가 하는 연구도 신바람 나서 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 사비를 들여 카이스트 교내에 조각공원도 만들었고 평생 모아온 1000여 점에 달하는 골동품도 기증했습니다. 연평균 5000명 이상 무료진료도 하고 있어요. 재산은 물론 제가 가진 모든 재능을 기부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장학금, 연구비 지원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항생 물질 연구와 조직 세포의 노화방지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에도 계속 노력할 겁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과학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데 요즘 과학자들을 너무 예우해 주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군대가 그 나라의 국력을 말했지만 이제는 과학이 그 나라의 국력을 말해주는 시대입니다.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과학자들이 예우 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 류근철 교수 약력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 ▲1972년 세계최초 침 마취 맹장수술 성공 ▲2010년 과학기술 훈장 1등급 창조장 수상 ▲경희대 한의학 석·박사 ▲모스크바 국립공대 의공학 박사 ▲KAIST 명예 이학 박사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부원장 ▲경희대 의대 부교수 ▲경희한방의료원 부원장 ▲러시아 모스크바국립공대 교수 ▲2008년 KAIST 초빙 특훈 교수 ▲닥터류 헬스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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