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이마트 피자와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둘러싼 공방도 크게는 대기업과 영세상인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영세상인의 상권 침입’과 ‘합법적 이윤추구’를 주장하는 각측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기업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는 합법적”이라며 항변하고 있고, 일부 소비자 또한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SSM이나 대형마트의 저가 먹을거리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소매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명륜동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상식(52)씨는 “최근 인근에 SSM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면서 “SSM은 경기 불황 같은 것과는 달라서 한 번 입점이 되고 나면 우리가 장사를 접고 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대기업과 협력업체·소매점 나아가 소비자, 종업원 등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 그리고 피자에서 치킨까지
SSM 갈등은 대기업의 대형마트가 슈퍼마켓 형태로 골목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영세상인의 상권을 침입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대형마트보다는 접근이 쉬운 인근 슈퍼마켓에서 소량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대형 유통업체들은 골목 상권으로 눈을 돌렸다.
최근 불거진 ‘피자’나 ‘치킨’ 논란 역시 대형 유통업체가 서민들의 우선적 창업 고려대상인 ‘소자본 먹을거리 창업’에까지 손을 뻗쳐 발생한 사건이다. 논란의 핵심에는 이마트 피자가 있다. ‘값 싸고 맛 좋고 양 많다’는 코스트코 피자(1만2500원, 44cm)를 뛰어넘는 가격과 사이즈(1만1500원, 45cm)로 이마트가 초대형 피자를 내놓은 것. 롯데마트도 이에 질세라 야심차게 ‘통큰치킨’을 시장에 선보였다. 그러나 도를 넘은 대형마트의 이윤추구 행위는 ‘소비자’와 ‘영세상인’, ‘지역사회’라는 이해관계자의 벽에 부딪혔다. 프랜차이즈협회는 ‘통큰치킨’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잇달아 열며 거센 반발에 나섰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영세 상인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네티즌들은 “싼 가격에 끌리기도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통큰치킨 판매는 ‘7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광주광역시 매곡동 지역 주민들은 매곡동 이마트 입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마트 입점 저지 대책위’는 12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마트 피자로 동네가게를 몰락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추가입점을 하려고 하느냐”며 반발했다. 대기업과 영세상인, 대기업과 지역주민 등 이해 관계자 간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누구나 상생을 바라지만 아무나 상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경제제일주의, 물질만능주의, 신자유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한 한국사회에서 그 꿈을 현실로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편하고 쉬운 길을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도덕,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큰 반발심이 없다고 판단되면 일단 사업을 확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SSM, 이마트피자, 롯데슈퍼 통큰치킨 등이다.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이윤극대화 기업운영이 미래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겠냐는 점이다. 경희대 경영대학 박용승 교수(스테파노·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전문위원)는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한 정보의 대중화와 현상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인류 문명의 진화 등으로 인해 이 시대는 명성에 따른 자본, 즉 기업의 모든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명성과 신뢰를 자본으로 삼는 기업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경영의 화두는 상생과 협력이며, 이를 통해서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신뢰받지 못하는 기업들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입점을 준비하던 월마트는, 월마트를 비도덕적인 기업으로 간주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입점을 포기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춘천과 원주, 광주 매곡동에서 이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난 바 있다. 상생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확장이 결국 기업 자신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상생, 협력, 모든 이해 관계자들을 고려한 기업의 경영방식은 가톨릭교회가 그동안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가르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보편교회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향해온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정신을 한결같이 강조해왔다.
“공동체 정신에 기반을 둔 기업경영이야말로 기업의 경제적 요구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다시 인간사회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을 이루게 한다. 기업의 공동체적 관점은 서로의 반목을 극복할 수 있는 신뢰 구축의 열쇠이기도 하며 탈산업화 지식기반경제 환경의 새로운 시대에 진정한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기업 경영은 오로지 소유주의 이익만 고려해서는 안 되며, 노동자, 고객, 여러 생산요소의 공급업자, 하위 공동체 등 기업의 생존에 이바지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확신이 증대되고 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진리안의 사랑 40항)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교회의 가르침이 실제 새롭게 부각되는 경영패러다임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기업은 투자자·소비자·종업원·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개개인 모두를 고려한 상생과 협력의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 경희대 경영대학 박용승 교수
“교회 정신 바탕으로 건강한 경제 추구”
▲ 박용승 교수
“이번 사건을 통해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면을 엿봤습니다. 거대 글로벌 자본의 문제점, 상생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행동이 나타났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자정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가톨릭 영성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교회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향해온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정신을 한결같이 강조해왔습니다. 인간성 회복을 향한 기업의 시대적 소명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요. 이런 가톨릭 사회교리 정신과 통하는 것이 ‘건강한 경제 피라미드, 즉 경제 생태계’입니다. 모든 것은 다 연결돼 있습니다. 영세 상인이 잘 살 때, 대기업도 경쟁적 우위를 지닐 수 있지요.”
박 교수는 “이런 경제 생태학적 관점은 하느님의 ‘조화’와도 통하는 개념”이라면서 “결국 기업 경영도 ‘이타적 사랑’이라는 가톨릭 영성 안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예수님과 같은 사랑, 사심 없는 이타적 사랑의 영성 안에 기업을 운영할 때 사랑받는 기업, 신뢰받는 기업으로서의 경쟁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은 ‘합리성 포기’가 아니라 기업의 ‘계몽된 자기추구행위’로 본다”면서 “이러한 시대에는 가톨릭교회와 우리 신앙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제는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정신과 가난한 자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가톨릭 사회교리 정신은 새로운 기업경영 패러다임의 영성으로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남은 과제는 이러한 영성이 기업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영성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소비자·종업원·협력업체 등 이해 관계자 개개인 모두가 영적으로 성화돼 있을 때 모두가 상생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