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 20일 가톨릭시보 1면의 첫머리를 장식한 기사는 ‘김남수 신부를 주교로 서임’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교구가 설정된 지 11년 만에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를 얻게 된 것이다.
기사는 첫머리에 김남수 주교의 얼굴을 동그란 사진으로 싣고, 김 주교의 교구장 임명과 앞으로의 행보, 그의 약력을 보도기사로 소개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0월 14일자로 김남수 신부(안젤로·52)를 주교로 서임, 발령하는 동시 작년 11월 윤공희 주교가 광주대주교로 전임된 이후 공석 중이던 수원교구 제2대 교구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김남수 신부의 교구장 임명 소식은 교구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교구장의 빈자리를 1973년 직무대리로 선출된 정덕진 신부(당시 소화초등학교 교장)가 대신하고 있었지만, 교구장 공석은 교구에게 실로 큰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정 신부는 직무대리로 취임할 당시 “어려운 시기에 다 같이 협력해 새 주교를 맞이할 준비를 잘 하자”고 당부한 바 있다.
기사는 김남수 신부의 주교 성성 및 수원교구장 착좌식은 수원교구 형편에 따라 추후 결정하기로 한 것 등을 전하며, 김남수 주교의 약력을 함께 실었다. 만주에서 태어나 제1대 교구장 윤공희 주교처럼 함경남도 덕원신학교를 거친 사제가 제2대 교구장으로 서임된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큰 기대를 걸게 했다.
김남수 주교의 임명으로 당시 한국 가톨릭교회 주교 이상 성직자 수는 15명에서 16명으로 늘어났다. 가톨릭시보는 김남수 주교의 교구장 임명을 축하하며, 약력을 간략하게 이렇게 정리했다.
“1922년 6월 4일 만주 북간도에서 출생, 함경남도 덕원신학교를 거쳐 1948년 10월 17일 사제로 서품된 김남수 신부는 그동안 부산에서의 10년간 사목생활을 비롯 8년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무총장직을 역임하는 등 ‘광범한 신자사목’과 ‘교회행정 일선’에서 몸 바쳐 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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