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아,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땅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이사악은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어 낳은 외아들이었다. 이렇게 데려가실 거라면 차라리 주시질 마시지. 보통 사람 같으면 울고 불고 할 일이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토 하나 달지 않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3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데리고 갔던 하인들에게 기다리라 하고는 아들 이사악에게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게 하고 자신은 불과 칼을 들고 산을 올랐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고 그 위에 아들 이사악을 묶어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난다.
“아브라함아 그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끌어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하느님은 복종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하셨고,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하셨다.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구약성경의 이 유명한 일화를 20세기 화가로는 드물게 샤갈도 그렸다. 아브라함이 장작불 위에 이삭을 눕혀놓고 칼로 막 찌르려는 찰나에 천사가 나타나자 아브라함은 행위를 중단하고 천사를 바라보고 있다. 순도 높은 강렬한 색을 즐겨 쓰는 샤갈은 여기서 아브라함을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암시하려는 듯, 혹은 아들의 피를 상징하려는 듯 붉은색으로 칠했다. 노랗게 칠해진 이사악은 저항할 수 없다는 듯 창백한 노란색으로 그려졌다. 나무 뒤에는 양 한 마리가 보이는데 물론 이사악을 대신할 번제물이다.
여기까지는 역대 화가들이 이 주제를 그릴 때 그리던 대로다. 그런데 샤갈의 그림에서는 몇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보인다. 푸른 천사 뒤쪽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또 하나의 천사를 그린 것이며, 나무 뒤쪽에서 두 손에 가슴을 대고 조마조마하게 아들의 희생을 지켜보고 있는 이사악의 어머니이자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그린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면 오른쪽 위 십자가를 메고 있는 그리스도와 몇몇 사람들을 그린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샤갈은 이사악의 죄 없는 희생을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샤갈이 성화의 기본적인 형식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가 성경의 이야기를 깊이 묵상하였음을 보여준다.
따스한 햇살과 아름다운 해변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알려진 남프랑스 니스에 샤갈 미술관이 있다.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나지막한 이 미술관은 20세기 최고의 화가로서 초현실주의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샤갈의 성화 40여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색채의 마술사인 샤갈의 자유로운 영혼과 깊은 신앙의 고백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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