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 마자 우연인 듯 다가와서 건네는 이 한마디는 이제 그리 낯선 경험이 아니다. 시내를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으례 만나는 「도인(道人)」들은 물질문명의 공허에 찌들고 삶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을 잠깐이나마 혹시 새로운 시대, 「뉴 에이지」에 대한 허상으로 유혹한다.
우리 사회와 문화 안에서 선(禪), 단학, 요가, 단전호흡, 도(道), 초월, 명상, 기공(氣功) 같은 동양사상과 동양의 신비적 비술, 또는 영술 운동들은 단순한 유행 수준을 넘어섰다. 세기말을 향해 가면서 서양의 물질문명과 합리적 이성이 그 한계를 드러내는 듯했고 세계는 동양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같은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추세가 구체적인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 것 중 하나가 각종 동양적 심신수련법들의 유행이다.
동양적 심신수련법 확산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선(禪)은 종교적 테두리를 벗어나 대중들에게 퍼져나가던 쵝에는 극히 소소만의 별스런 취미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도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만도 한마음 선원, 강남 포교원, 금강선원, 선학원, 원불교 선방 등 이름난 선원이 10여개가 넘는다. 모두 일반인들이 참여가능한 곳이다.
방학이나 휴가철이면 불교 사찰들이 며칠에서 일주일씩 열리는 참선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TV광고에도 참선하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선 수행은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심신수련이 됐다. 더욱이 패션이나 미술, 음악, 음식 등 각종 문화적 코드 안에서까지 도입돼 일상생활 안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기(氣) 수련은 더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건강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정신적인 요소를 통해 신체의 건강을 도모하는 기 수련단체는 이제 헬스클럽 만큼 자주 눈에 띈다.
국내의 기 수련 인구는 어림잡아 120만명. 200만명을 넘어선다는 주장도 있으나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는다.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기 운동 열풍은 특히 IMF 이후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국내 대표적인 한 기 수련 단체의 경우 지금까지 50만명의 수련인을 배출해냈고 현재 74개 전수원(수련 도장)과 100여개 각급 기관, 기업 등에서 연수장을 마련해 동호인을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다. 또 다른 기 수련 단체는 전국에 지부만 300여개를 둔 최대 규모로 현재 등록 회원만 5만에 총 100만명이 수련을 했다고 한다.
이들 단체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지부를 두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40여개 이상의 지원을 운영하는 기 수련원은 「동양적 정신스포츠」로 불리우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계·물질문명 거부
이들 기 수련 또는 선, 명상 등 동양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심신 수련법들은 현대 물질 문명, 디지털 문명의 기계적 소음에 대한 현대인들의 환멸 탓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심신 수련법들이 단순히 건강의 증진과 마음의 안정을 위한 도구로 그치지 않고 기를 우주만물의 기원으로 받아들인다거나 기 수련을 통해 초능력을 갖춘다거나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데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우려를 바탕으로 지난 1997년 「건전한 신앙생활을 핸치는 운동과 흐름」이라는 자료집을 발행한 바 있다. 자료집에서는 유사 종교, 종교적 다원주의, 사적 계시 등의 현상을 지적하면서 선, 명상, 기운동 등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자료집은 명상, 요가, 도, 선, 기공, 단전호흡과 같은 방법을 심신수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기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긴다거나 기 체험을 성령 체험으로 해석하는 것 등은 그리스도 신앙의 고유성과 참된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에이지 운동의 위험성
자료집은 이러한 운동들을 뉴에이지 운동의 한 형태, 그리고 건강이나 차병과 관련된 비술(秘術)과 영술(靈術) 운동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운동들이 자칫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뉴에이지 운동은 우주의 중심을 하느님이 아닌 자연에서 찾고 자연과의 일치와 조화를 강조한다. 하느님은 유일한 구세주가 아니며 단지 우주의 신적 에너지일 뿐이다.
이들은 구원이 개개인의 영성적 변화, 즉 인간의 내적 능력을 계발해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뉴에이지 운동의 추종자들은 만물이 하나라는 일원론에서 범신론을 이끌어내고 신은 만물 안에 존재하고 만물은 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구나 초월적인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신이 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사회 전반의 건강과 심신 수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가톨릭 신자들 중에도 이러한 동양적 심신수련 단체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신체의 건강을 증진하고 마음을 단련하는 전래의 심신수련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인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하거나 오해하고 지나치게 몰두하게 될 때 그것은 자칫 신앙생활 자체를 개인중심, 현세중심, 기복중심, 체험중심에 빠트릴 우려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의 본질이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윤리 의식이 희박하게 되거나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이 이러한 단체에 참여할 때에는 그 목적과 내용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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