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해마다 보잘것 없는 결심이나마 새롭게 하게 만들어 줘서 고맙지요』
올해로 34년째 사순절을 맞는 성찬경(사도 요한·70) 시인은 사순절 기간동안 매일 미사를 드리겠노라는 자신의 결심이 올해만은 중간에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심부터 쑥쓰럽게 밝힌다.
사생활이라곤 좀체 생각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강단에서 물러난 성 시인은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기기라도 하려는 양 따뜻한 봄 햇살이 즐거운 안국동 거리로 기자를 불러냈다.
햇볕이 잘 드는 다방에서 만난 성 시인은 끝없이 묵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죽음」에 대해 또 질문한다며 싫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사, 나아가 이 우주 모든 비밀의 핵심이 신자가 사순절 동안 묵상하게 되는 죽음에 녹아 있다고 봐요. 그러니 사순절을 수십번 지내도 비밀에 다가서기가 힘든 게 당연하지요』
지난 1966년 2월 영세를 하고 한달여만에 첫 사순절을 맞았다는 성 시인은 묘한 징크스를 털어놓는다.
사순절만 되면 자신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특별한 원인도 없이 시름시름 앓는다는 것.
육신으 힘겨움 가운데 예수가 진 십자가의 무게를 나눠지는 느낌을 갖는다는 그는 겸허하게 자숙하는 자세로 사순절을 맞아 왔다고.
산상수훈 중 「마음이 가난한 자」를 두고 한 예수의 가르침을 삶의 주제로 삼아왔다는 성 시인은 사순절 시기야말로 마음의 가난을 찾기 좋은 때라고 강조한다.
빠른 것, 속도감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존재를 확인하려고 드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심각한 병적 증후라고 질타하는 시인은 그러나 보이는 것만을 찾는 젊은 세개에 대해서도 기대를 놓지 않았다. 다만 보다 진지해질 것을 충고했다.
『성인들의 삶 속에 죽음의 비밀이 녹아 있지요. 살아서는 풀지 못할 죽음이라는 최대의 수수께끼를 겪고난 후 도달할 수 있는 참기쁨을 성인들은 맛본 분들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것에 대한 깊은 믿음이 삶의 깊이를 더한다고 강조하는 시인은 예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체험하면 고난 후의 부활이 자신의 기쁨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죽음의 본질이 변화되는 건 아니지요』
과학이 뿌리고 있는 씨앗 가운데서 덩달아 싹트는 개인주의 문화에서 눈을 돌리지 못함으로써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로인해 참생명에 이르는 길에 대한 묵상을 소홀히 하고 마는 현실, 성 시인은 사순절이 이런 현실을 돌려놓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길조차 모르는 젊은 신자들의 모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자애로운 아버지 같았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손을 벌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죽을 때까지 주님의 손을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다면 신자된 보람이 없겠지요』
입에 단 음식만 좋아하는 신자들의 생활에 매년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순절, 티끌로 돌아가고 마는 삶의 본질에 대한 묵상이 무뎌지는 현실에서 성 시인의 사순절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래서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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