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천주의 관계는 어떠할까?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조합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넘어서 무형적으로 존재하는 귀신과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사물과 귀신의 창조자인 하느님은 피조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 관계는 존재 차원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이지만, 리치는 창조사상의 언저리에서 논술한다.
동양식 사고에 따르면, 우주 만물의 본성은 모두 선(善)하며 하나의 몸(一體)이다. 그리고 천주이신 상제는 개개의 사물에 내재하여 만물과 하나가 된다고 했다(天主上帝 卽在各物之內而與物爲一). 그러므로 악행을 저질러 본래의 선함을 더럽히지 말며, 의를 어기어서 본연의 도리를 범하지 말고, 만물을 해쳐서 내심의 하느님(上帝)을 모독하지 말라(勿爲惡, 以玷己之本善焉 勿違義, 以犯己之本然之理焉 勿害物, 以侮其內心之上帝焉!)고 했다. 영혼의 불멸하는 본성은 교화되어 천주께 돌아간다(不滅本性而化歸于天主)고 했다.(IV-7) 이것 또한 영혼의 불멸성을 언명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천주(天主)는 아직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하느님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동양식 언명(言明)들이 리치의 하느님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동양의 하느님 이해를 염두에 둘 때,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창조주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은 창조계의 온갖 창조물들뿐만 아니라 여타 신(神)들의 창조주이시다. 귀신의 영역에 속하는 악귀들도 창조계의 일부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하느님을 거슬러 지옥에 떨어진 존재들이다. 사물(氣) 존재와 귀신은 차원이 다른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피조물이란 사실에서 동일하다. 존재의 차원은 구분되기 위해서 다시 윤리적 차원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덕은 인륜지덕(人倫之德)의 차원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성인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인륜지덕(人倫之德)을 제시하여 온갖 사회적 문제에 대응해 왔다. 가르침을 세우고 인륜을 밝혔으니(立敎明倫), 성인들은 세상을 다스리는 기틀을 만들었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큰 지혜를 내려서 온 세상을 영원토록 편안하게 했다(其肇基經世, 垂萬世不易之鴻猷, 而天下永賴以安).(IV-8) 중국인들의 생각에는 성인들의 공적이 없이 하느님 홀로 세상을 통치했다고 주장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덕(德)의 차원에서 이렇게 인식한다면, 유심론(唯心論)의 차원에서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동양의 세계에서 부처는 마음(心)의 위대한 묘용(妙用)을 알려준 인물이다. 성리학의 큰 가지를 이루는 육상산과 왕양명의 심학 전통에도 마음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의 몸도 만물들과 더불어 모두 마음속에 포함되어 있다(是身也與天地萬物, 咸蘊乎心). 이 마음은 아무리 멀어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아무리 높아도 올라가지 못할 곳이 없다. 또한 아무리 넓어도 둘러싸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작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며, 아무리 딱딱하여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 없다(是心無遠無逮, 無高乎升, 無廣不括, 無細不入, 無堅不度).(IV-8) 마음의 묘용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천주(天主)께서 마음속에 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은 불교와 성리학의 심학 전통에서 묘사된 마음의 묘용이 그리스도교적 존재론의 어법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리치는 창조론의 실존적 차원에 서서 불교의 인식론적 이해를 시도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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