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나에게 며칠 전에 어느 케이블 텔레비젼 방송을 통해 다시 보게 된 「포세이돈 어드벤춰」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의 거의 끝 장면이었는데, 몇 명 되지도 않는 생존자들이 최후의 희망을 걸고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기며, 그리고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고 찾아간 곳은 절망스럽게도 철판이 빈틈없어 덮여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곳은 물이 아직 차 있지는 않았지만 뒤집어진 배의 밑바닥으로서 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순간이엇다. 그래서 그들은 망연자실 절망하여 미친듯이 소리치며 천장의 철판을 두드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랍게도 가냘픈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였으나 자시 후에는 철판 맊에서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나에게는 이 순간, 그 누군가가 절망에 빠진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그들의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갇혀있던 그 어두운 공간에 산소용접기로 절단되고 있는 철판 틈새로 날아 들어오는 산소용접의 튀는 불꽃과 그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살도 잊혀지지 않는다. 절망과 희망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장면도 사도들과 후기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따르던」신앙의 길에서 절망적 상황에 빠지게 될 때, 그들에게 새롭게 살아 갈 희망과 용기를 주던, 힘찬 한 줄기 빛살과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코 복음서 안에서 이 대목이 놓여 있는 문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르코 복음서 안에서 오늘 복음의 대목은 그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와 『나를 따르려거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장면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체험하기 전에,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神的인 영광으로 충만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그들의 신앙을 굳세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은 산」은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로 알려져 왔는데, 오랜 성서적 전통에서 보아도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서 계시와 기도의 장소이다(참조: 출애 24,1:2 베드 1,18). 높은 산에서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라는 마르코의 복음사가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얼굴에 빛나는 그 「영광」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나타날 영광이 미리 빛난 것이었다. 이는 예수님이 비록 지금 고난과 치욕의 길을 가시지만, 그 길이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영광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언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엘리야가 율법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라는 말은 구약성서 전체가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을 뜻하며 예수님이 앞으로 가시게 될 수난의 길이 구약성서의 계시된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셧으면 합니다』라는 베드로의 요청에 드러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광 속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 행복한 순간에 계속 머물고 싶어했다. 그들의 마음에 드는 메시지는 바로 그런 영광의 메시아에 관한 메시지이지, 많은 고통을 받고 죽어야하는 메시야에 관한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은총의 체험 후헤 산 위에서 세상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그들은 산 위에서 황홀한 체험에 취해 눌러 있어서는 안되었으며, 사람들이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뒤얽혀 살고 있는 세상 아래로 내려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스승 예수님을 뒤따라 가야했다. 산 아래의 외적 환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과 마음은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짧은 순간(시간)이었지만 「예수님의 영광을 본」눈과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오늘 복음의 말씀은 생의 여러 시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주님께 충실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한다. 정도의 차이가 크게 있겠지만,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신앙의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듯한 세상살이 한가운데서도 어느 순간, 어느 체험을 하면서 『아, 정말 주님께서 존재하시는구나! 그리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 존재가 결국 영원한 주님의 사랑의 계획 속에 뿌리내리고 있구나!』하는 것을 깊이 확신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면, 이런 체험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체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체험은 어려운 세상살이 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당신께 대한 믿음 속에 굳세게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큰 선물과 같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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