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논설(신경의 올바른 이해)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신경의 내용은 인간 구원을 위하여 구세사의 여러가지 사항들을 행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근본으로 신앙하면서, 거기에 열거된 구원의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성삼 신앙에 종속시켜서 믿고 고백하는 것이므로 신경에 언급되지 아니한 다른 사항들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다고 성서와 성전이 증거하는 것은 다 믿어야 하며, 결코 선택적으로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경의 각 조목을 성삼신앙에 연결하지 않고 따로 따로 떼어서 믿는 경우에는 웃지 못할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예컨데,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다」하면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천사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바로 대립시켜서 양자택일을 고민하고 현세에서 착한 사람이 고생하고 악한 사람이 호강하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존재나 그 분의 공의하심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성자께 대해서는, 예수님의 강생과 수난을 믿는다면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이나 재림은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각 조목을 선택적으로 믿거나 아니 믿거나 하는 것은 결국 성자 예수님을 아니 믿는 것이 된다. 또 사도신경에 수록된 구세사사건들은 믿는다면서 신경에 언급되지 아니한 예수님의 설교나 기적이나 생애 중에서 이것 저것 선택해서 취사하는 것도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신경의 제3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성령을 믿는다면서 교회나 모든 성인의 통공은 배척한다든지, 죄사함은 좋지만 육신부활은 인정하지 않는다 든지, 천당은 믿지만 지옥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라면 결국 성령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더 요약해 보면 성부와 성자를 믿는다면서 성령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대상은 그리고 목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신이고, 다른 모든 구원의 진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과 연관시켜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나는 신자이다』할 수 있으려면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다』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해석하여 정리한 그 많은 신앙 조항 중에서 이것 저것 마음에 드는 것은 인정하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서도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된 그리고 성숙한 신앙은 우리의 연약한 지성이나 감성에 의지하여 하느님의 사정이나 세상의 사정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고, 계시내용이나 세상만사를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하느님과 함께 판단하고 평가하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논하는 목적은 가톨릭 신앙의 본질을 보기 위한 것이다.
참된 신앙은 계시된 구원의 진리에 대한 인간의 승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계시된 진리를 하느님께서 계시하셨다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의지하여 인간이 수용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먼저 하느님의 선물이고 다음으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신뢰요 복종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