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문필가, 서예가로도 유명한 18세기 일본의 승려 하쿠인(白隱)은 종교적 실천에는 반드시 도덕적 생활이 뒤따라야 한다며, 당시 승려들과는 달리 가난한 농부들과 함께 살았다. 그의 숭고한 정신적 기풍과 겸손, 평온한 마음을 본받으려 모인 많은 추종자들은후일 일본 선종의 새로운 토대가 된다. 하쿠인 스님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하쿠인 스님이 살고 있던 마을의 한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처녀를 닥달했다. 『애아비가 누구냐? 당장 말해!』처녀는 다급한 김에 『하쿠인 스님이예요』라고 둘러대었다. 불같이 화가 난 처녀의 아버지는 하쿠인 스님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이 땡초야, 중놈이 애를 만들어?』그 말을 들은 하쿠인은 『그래요?』라고 한마디하고는 묵묵 무언이었다. 처녀가 아기를 낳자 처녀의 아버지는 아기를 하쿠인 스님에게 넘겨주며 『당신 아들이니 당신이 키우시오』라며 돌아가 버렸다. 하투인 스님은 이번에도 『그래요?』라고 할 뿐, 말없이 아기를 받아서는 이집저집 젖동냥을 해가며 정성스럽게 아이를 키웠다. 마침내 양심의 가책을 느낀 처녀가 부모에게 고백을 했다. 『하쿠인 스님이 애아비가 아니예요』너무 부끄럽고 당혹스런 부모는 다시 하쿠인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죄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덕이 높으신 스님께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하쿠인 스님은 아기를 처녀의 부모에게 넘겨주며 짤막하게 말했다. 『그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쿠인 스님이 이른 달관의 경지가 부럽기만 하다. 구차한 변명 없이 묵묵하기만 한 그의 내면은 인간에의 연민으로 가득하다. 실수하고 죄짓고 미워하고 남을 탁하고 억울하게 만드는 인간들. 그는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고 모든 죄를 묵묵히 뒤집어쓰고 빠스카의 어린양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닮았다고나 할까. 당신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자애 깊은 하늘 아버지(루가 15장)를 닮았다고 할까. 오늘, 시나이산에서 모세와 재계약을 맺으시며 자신과의 맹약을 그토록 빨리 깨뜨린 이스라엘을 다시 당신 백성으로 받아들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님(출애 34장)의 얼을 받았다고나 할까.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34장은 『돌판 두 개를 처음 것처럼 다듬어 놓아라. 그러면 그 돌판에다 지난번에 네가 깨뜨린 첫 돌판에 써주었던 글을 내가 다시 새겨주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계약에 대해서 가장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장에서 하느님은 먼저 자신의 속성을 새롭게 계시하신다. 『나는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그렇다고 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상이 거스르는 죄를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사대까지 벌한다』여기서 계시된 야훼의 속성은 「지나가시는(포착되지 않는)분, 자비와 은총의 신, 화내기를 더디하는 분,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시는(용서하시는) 분, 삼사대까지는 벌을 주는 분」리시라는 것이다(출애 34,6~7 참조).
야훼의 대표적 속성 중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는 「자비」로 표현되는 「불쌍히 여김」(긍휼, 출애 34,6)이다. 유명한 미국의 여성신학자 필리스 트리블에 의하면 이 말한마디의 히브리 어원은 여성의 자궁 또는 모태를 가리키는 말인 「레헴」이다. 모태가 생명이 창조되는 곳이자 무서운 진통이 있는 곳인 것처럼 하느님의 속성 자비도 그런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응징은 계약행위를 철저히 야훼의 말씀에 뿌리박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하느님의 계명을 주고 계약으로 얽어맨다는 것은 자비와 긍휼의 하느님, 노하기를 더디하며 끝없이 용서하시거나 벌을 주지 않는 것은 하닌 하느님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일종의 역설적 자기계시 행위이다. 야훼 하느님의 용서(구원)는 심판을 통한 교정과 갱신(재창조)의 사건이다. 이런 하느님 속성은 인간에게 감추어진(지나가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신비이다.
모세는 당신의 감추어진 속성을 밝혀주시는 하느님께 엎드려 청한다. 『부디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주십시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시고 우리를 길이 당신의 것으로 삼아주십니오』
하느님과 동행하는 특권은 세례성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이 되는 순간 무상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동생을 허락하는 세례성사의 은총만큼 귀한 것은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모세의 청을 들으신 야훼께서는 계약 체결을 약속하고 다시 십계명을 주신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1절의 말씀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깨뜨린 첫 돌판과 같은 내용의 글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번째 십계명과 첫번째 십계명(출애 20장)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십계명이 근본적으로 상반된 것은 아니다.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계명의 본질은 같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학자들은 첫 돌판의 십계명을 윤리적 십계명이라 하고, 나중 것은 제의적 혹은 전례적 십계명이라 한다. 오늘 본문에 실린 두 번째 십계명은 윤리적인 면보다는 하느님을 어떻게 경배하고 그분과 어떻게 동행하게 되는지를 가르쳐주는 부분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세례성사로써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은 우리도 매순간 그분과의 즐거운 동행을 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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