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전례를 매우 중요시하는 종교이고 전통 전례음악은 서양음악의 근간을 이루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특히 수백년에 걸쳐서 라틴어로 작곡된 미사곡(자비송, 영광송,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주옥같은 보배드이 많아서 가톨릭교회 뿐만 아니라 개신교 또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부활대축일, 성탄대축일 등 특별한 날에는 라틴어 미사곡을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 나라 언어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이 허용되자 라틴어 전례문과 함께 성가도 크게 위축되었다.
더구나 라틴어 환경에 덜 친숙한 사제의 증가로 인하여 라틴어 미사곡은 각 본당 전례에서 외국성가로 치부되어 성가대 지휘자들은 눈치를 보아가며 연주를 하거나 우리말 미사곡을 개창 또는 교창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추세다.
성음악에서도 경제학의 그레샴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아 성음악을 사랑하는 신자로서 안타깝다.
곧 다가올 새천년의 부활대축일을 앞두고 미사곡 선정에 고민을 하는 성가대가 많을 줄 안다. 좀 좋은 곡을 연주하려면 라틴어 미사곡으로 방향을 돌려야 하는데 신부님이 허락을 하실지, 신자들이 가사 뜻도 모르고 외국 노래를 왜 성가대만 독점하느냐고 항의하지 않을지…. 이러한 걱정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성당, 성가대라면 매우 축복(?)받은 성가대인 현실이 또한 안타깝다.
전례 원칙으로 돌아가면 미사 통상문인 미사곡은 사제, 성가대와 전 신자가 함께 부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전례주년 전체 중에서 특별한 때에 하느님께 특별한 정성을 갖추어 라틴어 미사곡을 성가대가 봉헌(또는 찬미)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설이나 추석 때 특별한 제수를 갖추어 조상을 기리듯이.
라틴어 미사곡 연주를 찬성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의 오랜 전통적인 전례음악이다. 우리는 대축일 때에 바티칸에서 중계되는 미사에서 연주되는 라티어 미사곡을 들으며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은 이해를 잘 하리라 믿는다. 또한 우리말 미사곡이 몇 곡 안되는데 비하여 라틴어 미사곡은 세계적인 거장에 의하여 작곡되고 수백년동안 검증받은 좋은 곡들이 많다.
이러한 곡에 도전함으로써 성가대의 수준이 한단계 올라가고 결국 하느님을 더 좋은 소리로 찬양하고 미사를 더욱 장엄하고 거룩하게 이끈다. 우리말 미사곡도 훌륭한 것이 있으나 몇 곡 안되어 전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경사로운 부활대축일에 애조를 띤 미사곡을 불러야 하는가?
기악과 달리 성악곡은 가사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 팝송을 배울 때 곡에 매료되어 선율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뜻을 이해하지 처음부터 가사내용을 다 파악하지 않았듯이 「글로리아」라고 하면 대영광송이고 「쌍뚜스」하면 거룩하시다 정도의 뜻을 다 알 수 잇으므로 별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것은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음악에서 라틴어 미사곡을 외국곡이라고 배척한다든지 꼭 한글로 번역해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의 전례음악은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개신교에서 미사곡 가치를 알고 찬양(우리의 특송)으로 글로리아, 쌍뚜스 등을 연주하는 것을 부러운 눈초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월 20일 제주교구 서귀포성당에서 개최된 2박3일간의 성음악연수에서 약 160여명의 성가대원들이 모여 고전성가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효성가톨릭대학교 종교음악과 교수진(박대종 신부, 홍인식 수녀, 고승익 교수, 박재관 교수)이 그레고리오 성가교육과 라틴어미사를 거행하여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긴 사순시기를 지내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의 기쁨을 환호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라틴어 미사곡은 남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 교회음악의 일부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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