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4) 사도 성요한
성령의 은사 사용과 윤리생활이 일치되면 금상첨화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은 가끔 체험한다.
이 교회가 지닌 또 다른 장점은 니꼴라오파의 소행을 미워하여 그 당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점이다. 니꼴라오파에 대해서느 여러 의견이 있다. 한 두가지만 소개하면 이러하다.
고전적 해석에 의하면, 이 파의 주창자는 안티오키아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니꼴라우스(Nikolaus)이다. 그들은 에페소와
뻬르가모 교회 안에 그러난 이단의 한 파(묵시 2,6,15)이며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장)에서 결정된 우상에게 드린 예물과 음행을 피해야 하는 데도 그 규정을 지키지 않고 그런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 이레네오의 반이단론(Adv. Haeres, Ⅰ.26, 3 Ⅲ. 11,1)에 의하면 니꼴라우스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부제 중의 하나였다(사도 6,5). 또한 히볼리뚜스(Hippolytus)의 철학논문집(Philosophoumena Ⅵ. 36)에서도 그 주창자를 이레네오 성인과 같이 본 듯하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Clemens Alexandtianus Titus Flavius)는 다른 주장을 하였다. 니꼴라오 자신은 실제로는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는데 그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의 사상을 잘못 가르쳐 그런 결과가 나왓다고 주장하였으며(Strom. Ⅱ. 20) 교회사가 에우세비오도 자신이 쓴 교회사에서 끌레멘스의 주장을 지지하였다(Hist. Ⅲ. 29). 이런 상이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3세기경 영지주의와 결탁된 듯하며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대 성서학자들은 니꼴라우스란 이름을 단지 은유적이며 『백성의 정복자』라는 의미로 보고 있다.
이런 좋은 점들을 지녔던 에페소 교회도 잘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교회 구성원들이 하느님께 대해 처음에 지녔던 사랑과 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처음에 지녓던 사랑과 열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성취해 나갈 때 열성을 가진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하느님을 알게 된 어느 외교인이 열심히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살다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열성이 식어지는 경우가 있다. 비단 이런 신자들 뿐 아니라 구교우들과 소위 열심하다는 신자들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누구나 잦은 성찰과 반성, 피정이나 연수, 고해성사를 통해 주님의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변화된 삶만이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다. 묵시록은 말한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만일 그렇지 않고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너의 등경을 치워 버리겠다〔(2, 5). 그러므로 진심으로 회심하여(metanoia) 주님께 가졌던 열성과 사랑을 다시 찾아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스미르나 교회(2, 8~11)
이 교회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다. 그들은 유대아 전쟁(66~74년)을 인해 갈릴레아나 유대아로부터 이민온 사람들이었으므로 가난하였다. 이 교회의 신도들은 유다인으로 자칭하는 악령의 무리에게 비방도 당하였다. 이들은 악마의 유혹을 받아 그들 중 몇 사람은 감옥에 갇히게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악령은 중상하는 자로서 사탄과 동일한 인물이며 반대자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도 성 요한의 추종자들을 반대하는 자들 배후에 있는 악령들의 두목으로서 마지막 세력이자 조종자이다. 그는 악과 죄로서 일시적으로 승리할 것이나 그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은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모범이신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므로 그분께 충성을 다하면 그분으로부터 생명의 월계관을 받는다. 어둠의 세력이 거두고 있는 현재의 승리, 하느님께 대한 고집스러운 배척, 하느님 사랑의 법에 대한 반역, 불신앙으로 거두는 승리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충성심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진리의 말씀이다.
뻬르가모 교회(2, 12~17)
이 교회의 신도들은 지방 관리들을 이용하여 자행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강건한 믿음을 보인 충성스러운 성도들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사탄의 왕좌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뻬르가모 성채 위의 제우스에게 봉헌된 제단이나 로마와 아우구스뚜스에게 봉헌된 성전 또는 로마 통치자의 좌석을 의미할 수 있다. 주님의 진실한 증인이었던 안띠빠스가 처형된 것은 사탄의 왕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스미르나 교회에서 본 것처럼 사탄이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지방 관리들이나 박해를 가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사탄의 왕자란 로마 지방 장관의 재판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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