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지역감정
4·13 총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에는 또다시 지역감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역감정의 폐해에 대한 수없는 지적과 반성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지역감정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일부 정당이 사생결잔식으로 지역감정에 의존해 선거를 치루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의 다른 어느 선거 못지 않게 지역감정 조장이 노골화되고 있다.
3월초 한 김씨의 「DJ 지역감정 책임론」으로 폭발한 지역감정 공방은 다른 정당의 고위 정치인 K씨의 「영남 정권 재창출」발언을 계기로 급속도로 번지고 급기야는 「신당이 실패하면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는 또 다른 고위급 인사의 발언까지 나왔다. 지난 92년 대선때에도 한 복집에서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모여 앉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이러한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에 대한 국민들, 특히 시민단체들의 비난이 극에 달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지역감정 조장만이 그들의 살길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3월 들어서면서 이러한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비난적인 여론에 밀려 잠깐 주춤하지만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 추잡함과 치졸함은 도를 더할 것이 분명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지역감정 조장이 실제로는 유권자들에게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40대 이상 여론을 이끌어가는 지도층들의 경우 다른 연령층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혈연 지연 학연 등에 따라서 투표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의 획득을 위해서는 어떤 행태도 마다하지 않는 정치권의 권력 다툼은 이미 비난의 대상을 넘어서 청산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뿌리깊은 지역감정의 해소는 아직 길이 먼 것 같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향해, 유권자들의 표를 붙잡기 위해 사용되는 감정적 호소가 고작 지역감정이라는 사실은 실제로 그것이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의 심성 안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지역적 편견이 먼저 청산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몇 년전 한 시사주간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역감정 여론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96년초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정치가 「지역」을 청산하기는 그리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확대재생산하지 않더라도 여론을 주도하는 지도층 자체가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3명 정도가 특정지역 출신 사람들을 기피하고 있다. 사귀고 싶지 않거나 자녀와 결혼시키고 싶지 않거나 동업 상대나 차기 대통령으로 피하고 싶은 사람으로 꼽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약 10% 정도가 특정 지역 출신을 기피하는 비율은 전체보다 훨씬 높았다. 화이트컬러층, 고학력과 고소득층, 가진 사람과 배운 사람일수록 더 지역감정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쨋든 우리 유권자들 안에서조차 부패한 정치권은 바로 그것을 악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자렛 사람 예수’
놀라운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메시아로 인정받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출신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성부의 안배이며 구세사의 흐름이었지만 예수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받은 땅 갈릴레아」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그분이 메시아가 될 수 없는 이유였다.
제자가 된 필립보가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 요셉의 아들 「나자렛 출신 예수」를 소개하자 그는 같은 갈릴레아 출신이면서도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수가 나올 수 있겠고?』라고 일축한다. 제자들 사이에도 지역감정이 존재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의 신원을 두고 갑론을박하면서 특히 예수의 출신 문제를 두고 많은 논란을 벌였다. 예수의 설교와 기적을 보면서도 참 예언자, 그리스도라고 탄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갈릴레아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수 있는가』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총독 빌라도는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하고는 「유다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명패를 십자가에 달아두었다. 최근 일부 성서학계에서는 여기에 유다인들의 지방색을 이용한 고도의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었다는 해석을 내린다.
명패에 굳이 출신지를 밝혀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써 붙인 것은 유다인들의 지방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무죄한 동포가 로마 군인들 손에 죽는다고 분개하는 것을 우려한 이 외국인 총독은 유다인들이 명패에 적힌 출신지를 보고서는 그 지역 출신에 대한 경멸과 편견으로, 전혀 동요가 없을 것을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다.
지역감정은 진리가 아니다
『지역감정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입니다. 지역감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 행동할 때에 바른 행동이 될 것입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우원회 4·13 총선거 담화문 중에서).
ㄱ릐스도인에게 있어 지역감정은 신앙인으로서 절대 피해야 할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이다. 그것은 진리에 바탕을 둔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때 그것은 「나자렛 사람」이라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유다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된다.
신앙인으로서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들을 뽑는 행위는 명백하게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상의 책임을 수반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도덕적인 힘으로 정치공동체가 더이상 불의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하는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책임이 있다』(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선거와 투표는 정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중대한 신앙행위이다. 따라서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이기심과 편견에 사로잡힌 선거권의 행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저버리는 중대한 실수이며 죄악이다.
결국 모든 국민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정(情)에 이끌리기 보다는 엄격한 객관적 진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희년은 『주님의 은총의 해이며 …상반된 집단 사이의 화해의 해』(제삼천년기 14항)이며 특별히 사순절은 회개와 참회의 시기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총선을 앞두고 담화문을 발표해 『사순시기와 겹친 총선 시기가 우리의 기도와 보속과 희생을 통하여 민족 구원과 화합의 때가 되게 하자』고 촉구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모든 편견과 증오를 불식시키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은 자기 고향 사람, 같은 천주교 신자, 동창 등을 이유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양심의 가르침에 따라 진리에 바탕을 두고 선겨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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