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평화장터입니다.”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문을 열자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판매봉사자들의 활기찬 인사소리와 함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산한 평일 오후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아늑한 조명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향긋한 커피향이 맴도는 광경이 사뭇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재활용 장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봉사자에게 매장의 소개를 부탁했다.
“네 이곳은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에서 운영하는 평화장터입니다. 1층에는 재활용 매장과 우리농 매장 그리고 EM코너가 마련돼 있고요. 한편에서는 미니카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층에는 도서매장과 작업실, 사무실 등이 있습니다.”
간단한 안내가 끝나고 구석구석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의류와 잡화, 생활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액세서리 코너를 차지한 여대생들, 학용품과 장난감 코너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새로 들어온 신상(?)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아주머니, 중절모를 고르고 있는 아저씨까지 모두가 ‘보물찾기’에 신이 난 표정이다.
이곳 평화장터의 상품은 모두 기증 물품이다. 매장을 방문해 전달하거나 홈페이지와 전화로 신청하면 수거차량이 방문하기도 한다. 의류와 잡화, 아동용품, 도서, 주방용품, 장식품, 가구, 가전 등 재사용이 가능한 어떤 물건도 기증할 수 있다고.
일단 기증품이 들어오면 봉사자들의 분류, 손질, 수선작업, 가격책정, 매장 진열 등이 진행된다. 수익금은 이웃들에 대한 사랑나눔에 쓰인다.
현재 평화장터는 한국카리타스, 부산교구 로사리오카리타스, 성프란치스꼬의집(장애아동 생활시설), 평화3000(지구촌 어린이 구호 단체), 소화영아재활원 등 8개 단체에 정기적으로 수익나눔을 하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2010년에는 부산지역 소년소녀가장 60가구에 쌀 지원, 독거노인 떡국떡 지원, 베트남 벤쩨성 지역 식수탱크와 화장실 설치 지원, 북한 어린이 돕기 콩우유 보내기 지원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미니카페에서 차를 주문하고 보니 찻값을 받는 두 개의 모금함이 눈에 띈다. 하나는 해외지원사업을 위해 사용되는 모금함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 복지시설인 성프란치스꼬의집을 후원하는 모금함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차를 마시고 또한 어려운 이웃에게도 작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매일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드는 평화장터는 보물창고라 불려진다. 매일 방문해 보물찾기에 나서고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이곳은 지역민들의 쉼터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분류와 가격 책정 등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평화장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어느 날, 재고 물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50% 세일을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가 마음에 쏙 드는 코트를 발견하고는 카운터로 달려와 7만 원을 허겁지겁 건넸다고 한다. 당황한 봉사자는 이 코트가 7만 원이 아니라 7000원이며, 지금은 세일기간이라 3500원만 주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이 옷은 분명히 친구가 백화점에서 700만 원을 주고산 명품인데 어떻게 3500원에 팔 수 있냐며 도리어 따졌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평화장터는 지역주민들과 나눔의식을 공유하고 매장 수익금의 사회적 환원을 위해 정기적으로 문화나눔 공연도 펼친다. 문화나눔 기획위원회를 구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5회 2·4·6·8·10월 마지막 수요일 오후 7시30분에 열리는 문화나눔은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 매회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나눔축제가 됐다. 문화나눔을 통해 가톨릭의 복음정신인 이웃사랑의 실현을 알리는 이 행사는 비신자들에게도 자연스레 선교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평화장터 담당 김희일 신부는 “우리 가톨릭교회가 현대 사회의 요구에 발맞춰 보다 필요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계발할 필요가 있다”면서 “나눔의 장터가 보다 많은 곳에 알려지고 전파돼 지역민과 함께하는 열린 교회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김 신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눔의 의미를 알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신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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