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한 모습으로 제대 꽃꽂이에 열중하고 있는 김원영씨의 모습.
김씨는 매주 화요일 저녁, 성당에 나와 어머니뻘의 봉사자들과 꽃꽂이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조금씩 실습을 통해 배워나가는 중이다. 시작한지는 6개월여밖에 안 됐지만 여자보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본당 안에 칭찬이 자자하다.
본당 헌화회 회장 김혜옥(비비안나)씨는 “여자들만의 성역이라고 여겨지던 꽃꽂이에 남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사실이 대견하다”며 “몰입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했다.
기자가 김씨를 만나러 간 날은 주님세례축일(9일)을 앞두고 있어 주님세례축일에 맞는 꽃꽂이를 선보였다.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길쭉한 모양의 스프링 게리, 아스파라거스, 스틸그라스 등을 이용, 물줄기를 표현했다. 또한 비둘기 모형으로는 성령을, 돌과 이끼로는 요르단 강가를 나타냈다.
사실 김씨의 이력은 꽃꽂이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로봇고등학교에서 로봇제어학을 전공했고, 2009년 국제기능올림픽에 모바일 로보틱스(C 언어나 그래픽 언어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로봇을 제어, 주어진 4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종목) 부문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도 땄다. 현재 회사에서는 반도체 관련 업무를 맡고 있고, 올해 입학한 대학교에서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지만 좋아하는 꽃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즐겁다.
“공학계열 학교를 나왔고, 하고 있는 일도 꽃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2~3번씩 들여다봐야 하지만 꽃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불편한 점은 없어요.”
▲ 주님세례축일에 맞추어 김원영씨가 만든 제대 꽃꽂이.
그가 꽃꽂이를 보고 반한 것은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면서부터였다. 김씨는 화훼장식 국가대표들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매료돼 버렸다고 전한다. 대회는 끝났지만 꽃꽂이에 대한 ‘설렘’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멍하니 앉아서 꽃 화분을 보고 있는데 ‘저 꽃을 다른 배치로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꽃꽂이를 배우면 더 잘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에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됐죠.”
이후 어머니의 소개를 통해 본당 헌화회 활동을 시작했다. 일반 꽃꽂이가 아닌 제대 꽃꽂이였기에 ‘꽃’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더욱 각별하다. 매주 전례에 맞춰 다양한 작품들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신앙 안에 새로워진 자신도 발견하게 됐다.
“전례에 맞춰 꽃꽂이를 하다보면 저절로 하느님 말씀을 작품에 반영하게 돼요. 그러다보니 안 읽던 성경도 새삼 다시 꺼내 읽게 됐어요. 또 평소 신앙생활에 대한 생각도 점점 달라지게 됐고요.”
지난해 사순시기에 준비했던 성당 중정(中庭)의 십자가도 평소에 흔히 보던 십자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꽃꽂이를 통해 신앙 안에서 한 뼘 더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꽃꽂이를 하며 자신 안에서도 더 많은 꿈과 가능성이 싹을 틔웠다. 또한 꽃꽂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전달해주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나면 부활이나, 성탄 전례 꽃꽂이도 해보고 싶어요. 또 만약 기회가 된다면 보육원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꽃꽂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