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고 허름한, 키 작은 움막 뿐이네요. 작고 누추해서 수녀님을 모시기가 난처해 소를 키우기로 했지요. 궁궐은 아니지만 따뜻한 집 한 채 지어둘테니 수녀님, 우리 마을에 오세요』
신자 수 겨우 200명 남짓. 강원도 산골마을 원주교구 백운성당에 얼마 전 송아지 11마리가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 뜻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보물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송아지를 이리저리 쓰다듬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라』고 손을 모아 기도하낟. 매주일 미사가 끝나면 신자들 중 40대, 50대의 젊은이들(?)은 일주일 동안 엄청나게 쌓인 쇠똥을 치우러 종종걸음으로 나선다. 양손에는 삽을 들었다.
축사가 비어있는 신자 할머니집에 맡겨두고 키우는 이 송아지들은 수녀님 모실 집을 짓는 종자돈이다. 한 1년 반 키우면 100만원 하던 송아지가 세 배 가깝게 껑충 가격이 뛴단다.
축사 안에 행여 스티로폼이라도 한 조각 있으면 질겁을 하고 쇠똥 밭 안으로 뛰어들어가 냉큼 집어낸다.
『이 소가 어떤 손데…. 그거 먹고 탈나면 안되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소머리를 쓸어본다.
공소가 성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김찬진 신부가 부임하던 날, 신자들 첫 인사가 『수녀님은 안 오세요?』였단다. 김신부는 그런 어르신들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마을에는 고령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지요. 거동을 못하는 할머니들도 많아요. 젊은 신부가 그 분들을 알뜰살뜰 보살피기에는 참 어려움이 많지요』
다행히 부임 얼마 후 김신부의 열정과 마을 주민들 속에 섞여 함께 살아가는 사목활동 덕분에 100여명의 신자가 삽시간에 200여명으로 불어났다. 교구에서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수녀님을 초청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저 먹고 입는데도 빠듯한 산골 마을 살림살이에서 별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마음 속으로만 간직했던 간절한 바람을 이루려 지난 2월 사목회의에서 결단을 내렸다.
1억원 정도 하는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소를 키우기로 했다. 20마리가 목표였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11마리에 그쳤다. 여유가 생기는대로 차차 더 송아지 수를 늘릴 생각이다.
본당이 갖고 있는 논 20마지기와 1천평의 밭에도 온갖 작물을 심어 신자들이 자기 집 일을 제쳐두고 모여 농사를 짓는다. 여기서 나오는 작물도 팔아서 건축기금에 보탤 요량이다. 오는 가을에는 개도 여러 마리 살 계획이다. 개는 따로 사료 값도 들지 않아 더 좋다. 개가 들어오면 집집마다 나눠주고 한 1년 키운 다음 모아서 「영양식」으로 팔 것이다. 개한테야 미안한 일이지만 살아 생전에는 온갖 이쁨 다 받을테니 너무 원망은 안해도 좋으리라.
큰 눈으로 꿈벅꿈벅, 송아지들은 백운본당 착한 신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여물을 먹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