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안에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기를 요구한다. ‘공동선’이다. 이 뜻을 조금 더 넓게 들여다보면,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모두와 연관돼 있다. 지금, 앓는 냉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구제역으로 목숨 같은 소와 돼지를 잃은 농민들이다. 소가 울고, 돼지도 울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로 인해 슬퍼하는, ‘더불어’ 사는 ‘농민’의 눈물이다.
# 반생명적 축산·방역 대책
“소는 안락사 시켰는데 돼지들은 생매장 당하고 있어요.”
한 농민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얼마 전 키우던 소를 축사 바로 옆에 묻고 축사 쪽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않았던 농민이다. 이 농민의 소는 다행히 안락사 후 땅에 매장됐지만, 돼지는 그렇지 않았다. 차마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매몰되던 돼지가 발굽으로 비닐을 뚫고 버둥거렸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농민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가축의 살처분으로 인해 생긴 단순한 금전적 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무분별한 살처분의 그림자가 농민의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한 후 2개월이 지났지만 구제역과의 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구제역 양성 반응을 보인 가축의 농가 반경 500m 내 가축은 모두 감염가축으로 간주, 살처분돼 왔다. 문제는 ‘살처분’의 방법이다. ‘매몰 방식’으로 진행되는 살처분의 방법은 초기 대응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무차별적이며, 환경오염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과 인력, 비용 등을 이유로 안락사가 아닌 생매장으로 살처분되는 가축들의 모습은 실무를 맡은 공무원이 ‘생지옥’이 따로 없다고 묘사할 정도로 잔인함을 더한다. 동물들은 괴로움에 발버둥치며 발굽을 세워 서로를 할퀴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의 피는 핏물이 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지난 17일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범종교인 긴급토론회’ 가운데 우희종(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의 발표는 무분별한 살처분의 맹점을 꼬집는다.
우 교수는 ‘동물 생명권에서 본 축산 상황과 우리사회’라는 발표에서 “동물의 생명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때 인간이 받는 피해도 심각함을 이번 구제역 사태는 보여준다”며 “살처분한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결국 동물에게 바람직한 환경이 사람에게도 바람직한 환경임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인간의 반생명적 대량 축산정책으로 가축의 질병이 야기되고, 다시 그 가축을 살처분하는 현상은 결국 ‘하느님 창조질서의 순환 고리’를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행동인 것이다. 따라서 살처분의 방식보다는 근원적인 반생명적 축산과 방역 대책을 보완하는 생태적 시각과 사회문화 조성이 절실하다.
이는 간추린 사회교리 459항이 ‘과학적 기술적 적용의 핵심이 되는 준거’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다른 모든 생물체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수반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농민들의 눈물에 건네는 손수건
2002년 수원교구는 ‘구제역 농가 돕기’ 2차 헌금을 걷어 농민들을 지원했으며, 당시 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피해 농민들을 찾아가 직접 위로했다.
청주교구 또한 2차 헌금을 실시하고, 구제역이 가라앉도록 묵주기도를 봉헌해줄 것을 당부했으며 성령강림대축일 본기도에 청원 기도문을 봉송하기도 했다. 구제역 발생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희종 교수는 “구제역이 전국토를 초토화시키면서 대규모 살처분 등 사회문제로 전개된 것은 당국의 방역 미숙 때문이다”며 “정부는 구제역이 전국토로 확산되는 시점까지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대규모 살처분에만 의존했다”고 원망했다.
실제로 구제역 방역에 있어 예방백신 접종의 유효성은 2000년도 학계보고를 통해 인정돼 있었고, 국제적으로도 백신의 현장 적용을 통해 구제역 조기 진압에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 청정국가로서의 명예와 경제적 이익을 잃지 않기 위해 살처분에만 의존했던 것은 ‘무리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책임을 따져 묻거나 적절한 보상대책을 세우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무엇보다 농민들과의 ‘적절한 연대’가 시급하다는 의견은 창조질서보전의 문제와는 또 다른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동선과 보조성,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 공동체 차원의 선에 적합하게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사회적 연대를 통한 농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목적 배려가 이어질 때 이들의 아픔도 치유가 된다.
김정식(로제리오·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씨는 “죽어가는 생명을 다시 살릴 방법이 내게는 없고 고통 받는 이웃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없지만 함께 아파하고 애도함으로써 상생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농민에 대한 연대와 공동선의 문제는 또다시 우리가 죽인 ‘가축’의 문제로 순환한다. 교회가 부르짖는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지켜내기 위해 ‘환경보호’는 의무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회교리는 ‘공동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는 각 사물의 본성과 그것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상호 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른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사회가 지닌 동물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현대인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느님 안에서의 창조질서와 공동선, 생명과의 공존 등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고민하고 그 입장을 사회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구제역으로 눈물 흘리는 농민들과 가축들에게 건넬 수 있는 단 하나의 ‘손수건’인 것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조해붕 신부는 “모든 생명과 환경은 괄시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므로 지금은 심각한 우려가 표명되는 상황”이라며 “인도적 차원에서 윤리적, 도덕적 환경 문제를 고려한 대처와 방법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살처분만이 최선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을 슬프게 한 구제역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공동선과 환경보존에 대한 의미를 되짚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교회가 외쳐왔던 먹을거리 살리기, 농촌 살리기, 땅 살리기, 환경 살리기 등의 ‘살리기’는 모두가 같은 맥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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