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바침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967년, 간첩혐의가 있는 친구의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실종되어 유고집이 발간되기까지 했던 저 유명한 천상병의 「귀천」이다. 1993년 4월 28일 그가 정말 「귀천」했을 때, 사람들은 『오래 전에 예행연습이 끝난 죽음』이라 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도 이슬처럼, 구름처럼, 소풍 온 어린이처럼 그렇게 살다가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곤 한다.
이집트의 천민,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을 모른 체 않으시고 팔을 뻗어 그들을 구출해내신 자비로운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기록인 때문일까? 출애굽기의 결부에 해당되는 오늘 본문 35~40장은 이미 25~31장에 지시된 봉헌 명령이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거룩하게 실행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 중 하나는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신에게 무언가를 바친다는 것은 실은 신에게서 받은 바를 그 분께 다시 돌려드림이다. 그러므로 봉헌은 엄마가 주신 사탕을 맛있게 먹으면서 엄마께도 하나 드리고 친구와도 나눠먹는 아이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신께서 주신 것을 돌려드리는 봉헌의 최고 형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그것은 순교일 수도 있고, 행복한 「귀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간을 내어드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생명」은 어찌보면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의 합이기 때문이다. 순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명의 일부인 시간을 드림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 가운데 재주있는 자는 모두 와서, 야훼께서 명령하신 물건을 만들어라』(35,10)는 주님의 명령의 기꺼운 마음으로 따른다. 백성들은 만남의 장막과 제사에 사용될 온갖 기구와 거룩한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자원해서 야훼께 건물로 바친다(35,21).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의 염으로 야훼께서 모세를 시켜 명령하신 것들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이 모든 것을 자원하여 야훼께 헌납하였다(35,29). 성서기자는 이처럼 너나없이 필요한 물자를 바쳤기 때문에 성막을 짓고도 남을 정도가 되어 더 이상 가져오지 못하게 금지했다는 말과 함께 『물자는 공사에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였다』(36,7)고 전한다.
출애굽기 25~31장에 이미 기록된 하느님의 명령은(송사의 순서만 조금 바뀔 뿐) 35~39장에서 거의 글자 그대로 실행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시부분에서는 성막 내부에 위치하는 궤와 그 밖의 설비들이 가장 먼저 지시되는데,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밖에 있는 장막이 먼저 설치되는 정도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외부공사를 먼저하고 인터리어에 필요한 것을 나중에 한 셈이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인 40장에서는 성막을 지어 봉헌하자 시나이산을 덮엇던 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과 함께 성막에 머물면서 이스라엘과 동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야훼가 성막에 머무심은 정적인 개념으로서의 정주가 아니다. 야훼의 머무심은 오히려 동적인 개념으로 그분의 신탁과 말씀이 일어나는 자리를 말한다. 따라서 그분의 거처인 성막은 야훼와 모세, 야훼와 백성이 함께 만나고 함께 걷는 「만남」과 「동행」의 자리이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광야의 방랑기인 출애굽기는 성막을 봉헌한 후 이스라엘과 동행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며 끝을 맺는다. 『그들이 헤매고 떠도는 동안, 낮에는 야훼의 구름이 성막을 덮어 주었고 밤에는 그 구름에서 불이 비치어 이스라엘 온 족속의 눈앞을 환히 밝혀주었다』
먼 훗날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자기 땅에서 추수한 첫 곡식을 제단에 가져와 바치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바쳤다 한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엇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 몸붙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불어나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혔습니다. 우리를 사정없이 부렸습니다. 야훼께서는 우리의 아우성을 들어시고 우리가 억눌려 고생하며 착취당하는 것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억센 손으로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아시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 곳으로 데려 오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셧습니다. 그런즉 야훼여, 주께서 저에게 주신 이 땅의 햇곡식을 이제 제가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역사적 신앙고백문」(신명 26,5~10)이라 하는데, 자신들의 과거사를 돌아보며 신앙을 고백했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인간의 행위들 중 하느님께 무언가를 봉헌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 또 있을까. 그분께 무언가를 봉헌하면 그것은 곧 거룩한 것이 된다. 그분을 위해 따로 바쳐진 시간은 거룩한 시간이 되고, 그분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은 거룩한 공간이 되며, 그분께 무언가를 바치면 그것은 거룩한 물건이 되며, 그분께 자신의 일생을 바치면 그것은 곧 거룩한 일생이 된다. 신에게 무엇을 바침,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수고해 주신 송향숙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 부턴 노틀담수녀회 김상옥(마리 가브리엘) 수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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