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흑석동본당 카페 ‘하랑’을 본당 신자와 지역 주민의 사랑방으로 성장시킨 일등 공신 이경훈 신부.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직접 뽑은 커피와 환한 웃음을 대접했다.
서울 흑석동본당 카페 ‘하랑’을 찾는 이들은 이러한 여유와 소통의 기회를 한껏 누릴 수 있다.
흑석동성당에 들어서면 향긋한 커피 향에 먼저 미소 짓게 된다. 덕분에 본당 납골당인 ‘평화의 쉼터’를 찾는 유가족들이나 지역 주민들도 성당을 찾을 때마다 품고 있던 왠지 모를 긴장감을 털어낸다.
하랑.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모된 이 이름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친교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문을 연 지는 꼭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카페에 대한 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젠 본당 신자들의 ‘참새방앗간’ 역할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어엿한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카페가 인기몰이를 시작하게 된 일등공신은 본당 주임인 이경훈 신부다. 사제가 환한 웃음과 뛰어난 실력으로 뽑아주는 커피 한 잔은 누구에게든 반가웠다.
특히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고 납골당을 찾는 유가족들과 비신자들은 카페에서 잠시 쉬며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사제와 대화하고 상담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기일이나 돼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 못다 누린 가족애도 카페에서 나눌 수 있었다. 이 신부가 직접 만들어 내민 커피 한 잔에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업적 공간이 아니기에 봉헌금으로 운영,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 수익금은 전액 주일학교 운영기금과 장학금,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여 일석삼조의 장점을 보인다.
그렇다면 본당 신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주일미사 후 카페를 이용하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어르신부터 어린이들까지 이용 대상도 폭넓다. 미사만 마치면 휑하니 성당을 떠나던 신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잠시라도 카페에 들러 신자들과 대화하고 친교를 다진다.
덕분에 성당엔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1층 교리실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만든 첫 번째 목표가 여실히 실현되는 모습이다.
이 신부는 부임 후 성당 건물이 어두침침하고 무엇보다 친교의 공간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신앙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의 하나로 마련한 것이 바로 하랑이었다. 커피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서 수준 높은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에 착안했다.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성당으로 향하게 하는 매개체로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신부가 신자들을 이끌고 교육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변화도 이어졌다.
▲ 본당 자모회 회원들도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카페 하랑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이 신부는 바리스타 교육 과정을 생각해냈다. 자모회 임원들과 가장 먼저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개인적인 연구 노력을 거쳐 직접 교육 지도에 나섰다. 지금까지 양성한 수료생만도 60여 명을 넘어섰다. 이웃본당에서도 팀을 이뤄 교육을 받으러 온다.
덕분에 하랑에서는 최고 실력을 가진 자모회원들이 전문적인 봉사를 펼치게 됐다. 회원 개개인의 자부심도 탄탄해졌다. 봉사자로서 요구되는 자격 요건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지만, 그 안에서도 봉사 경쟁률이 만만찮을 만큼 변화했다.
카페장 김미선(마멜다·42)씨는 “카페 덕분에 성당 분위기가 훨씬 밝아지고,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구심점이 생겨 반갑다”며 “특히 카페 봉사와 교육 등이 이어지면서 자모회가 더욱 활성화되고 개개인이 봉사활동을 통해 자부심도 더욱 높이게 됐다”고 전한다.
봉사자 이미경(수산나·51)씨도 “카페가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서로 ‘마음의 스킨십’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며 “앞으로도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더욱 전문적인 실력을 갖춰 봉사에 나서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사목을 접목해 본당사목을 활성화하는 모범 사례로 입소문이 나 사목자들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이 신부는 “복음을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이용해 전할 때 더욱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며 “국내 커피시장 규모가 2조 원을 넘어서고, 커피가 기호식품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품게 된 만큼, 성당 내 카페는 각 본당에서 사목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역설했다.
이 신부의 바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각 본당과 연대해 커피 공정무역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힘을 실어나갈 뜻을 품고 있다. 가톨릭 바리스타 협회 등도 창설돼 보다 전문적인 교육과 봉사활동이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하느님 안에서 이웃을 만나는 징검다리가 된 커피 한 잔, 카페 하랑에서는 매일매일 그 향기가 더욱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