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홍윤숙(데레사·75) 선생의 사순절은 십자가의 길로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연다는 그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나간다.
『몇년 전부터 사순절 때면 십자가의 길을 집에서 바치며 그분이 고통중에 가신 길을 묵상했습니다. 사실 제가 건장이 좋지 않아 기도 중에 쾌유를 빌고 싶었지만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든 길을 가셨는가 생각하면 차마 입이 열리지 않더군요』
작고한 「한국 평신도 신학 연구의 선구자」였던 남편 양한모 선생(아우구스티노)의 권유로 69년 세례를 받은 홍선생은 여느 신자들처럼 사순절 때 따로 금식, 금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화 장애가 심해 건강상 금식, 금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남들처럼 사순절에 금식 등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몇해 전 가톨릭신문에서 주최한 이스라엘 성지 순례로 새롭게 신앙의 눈을 떴다는 홍선생. 성지순례 중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까지 걸었던 발자취였다. 수없이 넘어짐을 반복하며 인류의 죄를 업고 가셨던 고난의 길. 홍선생은 이후 십자가의 길을 바칠때면 항상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30여년의 신앙생활 동안 주님께 얼마나 부족한 자녀였는지 이번 사순시기에 새삼 깨닫고 있다고 전한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믿어왔다고 생각했던 신앙생활.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로 이뤄졌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반성하게 됐다. 이후 홍선생은 예수님을 알게된 것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은총이고 축복인지 절감하게 됐다고.
『그동안 제가 원해서 주님을 택했고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또한 주님께서 택하신 자녀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동안 얼마나 교만하게 살았는가 반성하게 되더군요. 이번 사순절에는 그분의 오묘하신 섭리를 깊이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홍선생은 지난해 초 그의 12번째 시집 「조선의 꽃」을 발간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왔다. 올해도 홍선생은 새로운 시집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 시집의 주제는 인간의 삶. 인생의 황흔기에 접어든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신앙과 결부시켜 풀어나갈 것이라고 귀띰한다.
『결국 원죄라는 것은 생명 그 자체 안에서 풀어나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얻는 것은 분명 축복된 일이지만 핏덩어리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원죄를 갖게되죠. 제 인생을 정리하면서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해요』
1925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홍윤숙 선생은 47년 「문예신보」에 「가을」, 48년 「낙엽의 노래」「산상에서」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장식론」「고옥의 이름으로 고통을 사랑하다」「실낙원의 아침-내가 떠나는 날은」등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자류 그리고 순간의 지상」「해아래 사는 날」등이 발간됐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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