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원시인의 종교형태를 크게 세가지로 분류한다. 물신숭배는 어떤 물질에 영성적 힘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물질을 숭배하는 종교형태이다.
정령(精靈)숭배는 유일절대신(하느님)이 아닌 가장 잡종 신령이나 영혼을 숭배하는 것이다. 무당숭배는 신을 부르고 인간을 신령과 접촉시킨다는 무당이나 도사(道士)를 숭배하는 종교형태이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원시종교들은 인간 이상의 어떤 힘에 기대려하는 인간의 본능의 발로이지 결코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다. 그런데 고도의 신앙심을 가졌다는 가톨릭 신자들에게서도 실천적으로 원시종교의 잔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물신숭배의 잔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구원의 은총을 부여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제정하신 7성사외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교회가 설정하거나 인준한 준(準)성사가 많이 있다. 7성사는 교회의 의도대로 교회에 맞게 집전하면 틀림없이 효과를 내는 것이지만, 준성사는 받는 사람의 신앙이나 정성에 따라서 그 효과는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무효할 수도 있다.
준선사들 중에서는 구마(驅魔)식과 축복식이 대표적인 것이다. 구마식은 마귀를 내쫓는 예식으로서 특정한 조건하에 성직자가 집전하는 것이므로 극히 드물게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하느님께서 마귀를 내쫓아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지 그 예식절차로 자동적으로 마귀가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흔하게 시행되는 것이 축복식이다. 여기에도 아주 특별한 축성(祝聖)식이 있고, 절대다수의 경우는 단순한 축복식이다.
축성은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하느님을 흥숭하는 데에만 쓰기 위하여 영구히 갈라놓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교, 신부, 부제의 서품식이 바로 축성식이고, 성사집전에만 사용하는 성유는 축성된 기름이다. 그러나 축성됨으로써 사람이나 물질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의 존재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품성사로 축성된 성직자나 축성된 성유는 윤리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공경을 위해서 영구히 유보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유보(留保)를 학술적으로 성별(聖別)한다로 말한다(단, 미사 중의 성체축성은 전연 다른 뜻을 가진 교리용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축성의 뜻이 이런 것이라면, 신자들이 십자가나 묵주를 축청해 주기를 청하는 말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소위 성물이라고 부르는 물건들은 단순히 축복된 물건이지 축성된 것이 아니다. 축성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우기 주택이나 자동차를 축성한다는 것은 말도 아니다.
축복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복을 빌어준다는 말이니 일종의 기도행위이다. 그리고 복이나 벌을 받는 주체는 인격체이지 물질이 벌을 받거나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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