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다른 어떤 책보다 관심이 적고, 그에게 문학사나 전승사 연구 또한 희박한 편미여 성서학자들에게까지도 잘 읽혀지지 않는 책이 바로 이 레위기이다. 그것은 내용에 문제가 있고 규정과 법과 의식 서술의 단조로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우리 교회 내에서 특히 사제의 서품, 제단과 성기구의 축성 및 사제의 의무와 권리의 규정에 대하여 교회는 이 레위기의 성법전에 들어있는 자료를 상당히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하여 종교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임을 밝혀두고 싶다(참고·페데리꼬 바르바로, 구약주해집 2권).
레위기를 유대인들은 『와이끄라』(그리고 그가 부르시다)라고 부른다. 이는 첫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를 뽑는 유대인들의 작명법에 따른 것이다. 레위기라는 제목은 그리스식 작명법에 따라 이 책이 레위지파 즉 사제지파에 관한 전례법을 담고 있다 하여 「레위티콘」이라 불렀다. 거룩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의 법과 규정들을 모은 전례서(예배의 책)이며 신앙생활의 지침서이기도한 레위기는 모세오경의 중심이 된다. 왜냐하면 오경 전체를 율법이라 부른다면 그 총칭에 가장 적합하고, 모세 오경 가운데 율법으로만 이루어진 단 하나의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규율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유다 사람이 그 자녀들에게 성서를 가르칠 경우 제일먼저 사용한 책이다.
『너희는 나의 규정을 실천하고 나의 법을 지쳐서 그대로 걸을지니 나는 너희의 하느님 야훼이다』(레위 18,5). 『나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행동하여라. 너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레위 11,44 19,220,7 2,31-33). 이는 레위기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잘 표현한 구절들이다. 오직 한 분이신 참되고 거룩하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을 만들고자 하는 점이 집중되어 있다. 레위기 전체의 일관된 흐름은 높은 도덕수준을 품고 있으며 크게 두 가지 길(道)을 보여준다. :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1장~17장)과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18장~27장)이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위해서는 희생제사라는 길을 통해야만하고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율법을 지키는 일, 순종하는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구약성서 전체의 핵심사상 중의 하나인 거룩함(聖性)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거룩함을 가르치는 책(성화의 책)이라고도 한다. 또한 레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미사성제)를 예시해주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레위기 첫부분은 1~7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머무시고자 하시는 야훼 하느님을 하느님 마음에 들게 모실 수 있는 방법, 거룩한 그의 백성이 되도록 가르치는 제사법, 즉 제물을 바치는 법과 규정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동북쪽으로 240㎞ 떨어진 곳 사막 한가운데 팔미라 폐러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은 사방 200m이고 담 둘레가 무려 225m 되는 벨(Bel : 히브리어로는 바알)신전이다. 아직도 희생제물 동물들이 들어가는 거대한 문이 따로 있고, 희생제물을 잡아 처리하는 돌판이 그대로 있어서 그 당시의 상황을 가히 짐작케 한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이곳에서 사라졌을까.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느님께 그렇게 많은 희생제물을 바쳤으리라. 그러나 구약의 제사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져야 할 근본자세, 서로와의 관계, 즉 통교라고 할 수 있다. 봉헌 제물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가 흠숭과 감사와 화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는 신약에와서도 다를 바 없다. 대희년에 듣게 되는 레위기의 말씀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오늘 본문을 신약의 미사성제와 관견시켜 본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많은 희생제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의 십자가상 죽음으로써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다(히브, 8, 1~10, 18).
예루살렘에서 발행되는 「성지」(La Terra Santa)라는 잡지에 실린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온 주의기도에 대한 글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만약 당신이 지상의 것만을 추구한다면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이기주의로 인해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우리」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하느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거나 저주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물질적인 성공만을 원한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고통스럽거나 괴로울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의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원한을 품고 있다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악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자세를 가지지 않는다면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주의 기도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또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멘」이라고 말하지 말라』
매일 수없이 드리는 이 짧은 주님의 기도 안에 나의 신앙생활의 모든 지침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참으로 주님의 기도를 한 점 부끄럼 없이 드릴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느 이 세상 어느 제물보다 주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일찍이 당신의 사랑하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다.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호세아 6,5-6).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1~24).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 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8).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이 간곡한 울부짖음들이 대희년을 살아가는 우리들 안에서 참 기쁨으로 꽃피워지길 온 마음 다하여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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