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들이 기도를 한다는 사실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의문의 여기자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어나 수도자의 노동 그것도 육체노동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상황이 좀 다른 듯 합니다. 심지어 우리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이 땅을 갈고 풀을 베는 일을 한다고 하면 『수녀님들도 그런 일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수도자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올바르지 않은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3~4세기의 사막의 첫수도자들이나 6세기경 「서양 수도자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성 베네딕도는 수도자들이 노동을 하여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 베네딕도는 밭일이 힘들 때면 당시의 엄격한 단식을 완화시켜도 된다고 할만큼 노동 역시 수도생활에 있어 균형있는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 수도회들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을 하게 되면서 수도자들의 노동도 다양한 형태를 띄게 되지만 노동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은 수도생활 안에서 기도와 일의 균형을 잡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독서와 노동으로만 이루어진 예전 수도생활의 단순한 형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관상봉쇄순도원들에서는 아직도 기도와 노동의 균형문제가 수도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병원 등을 운영하지 않고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 당연히 따르는 문제가 수입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관상봉쇄수도원의 의무인 하루 일곱 번의 기도가 노동시간을 제한합니다. 그렇다고 수입을 많이 올리기 위해 이 일곱 번 기도의 수를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릴 수도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딜레마는 초기 수도자들에게도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사막의 성 안토니오나 베네딕도에게 빵을 가져다주는 친구가 있었고 중세에 수도원을 세울 때는 거의 대부분 기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하여 수도자와 신자가 만나는 장이 형성되는데 수도자의 기도가 자신만을 위한 것일 수 없고 교회와 세상을 위해 바쳐야 하듯 수도회의 카리스마 역시 수도자와 독점물이 아닌 교회의 것,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역사는 말해줍니다. 한 수도회의 카리스마가 교회나 세상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수도회 안에서만 뱅뱅 맴을 돌 때 고인물이 썩듯 썩어 가는 것입니다. 한편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도 오직 세상일에만 몰두한다면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수도원과 평신도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함께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교회가 풍요로워지고 생명력이 왕성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자 혹은 교회 단체와 평신도와의 만남은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이루어져왔습니다. 현대에는 중세와 같은 큰 기부도 있으나 그보다는 수없이 많이 생겨난 복지단체에서의 노동력 봉사나 매달 일정한 액수를 기부하는 회원제와 같은 형식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비교적 늦게 진출한 시토회 트라피스트 수녀회는 기도와 노동의 균형을 잡으며 살림을 꾸려가는데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이미 우리 수도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교회 밖에서 생계의 수단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봉쇄수도원인 공동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는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이 시대를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므로 지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내롭게 노력한다면 오히려 쉽게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수도생활에 깊이를 더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안에서 수정의 시토회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평신도들이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맛볼 수 있는 기회로 작년부터 「수도승생활체험 명상피정」을 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6월 19~25일, 7월 24~30일, 8월 21~27일, 11월 6~12일 네차례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신청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매년 7,8월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실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노동면에 았어서는 밭일, 이콘, 칠보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특히 쨈에 주력을 기울이고 잇습니다. 여러 해의 경험을 통해 교회 안에서의 판매에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식으로 제조허가를 받고 일반시중에서 판매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만으로는 수도원 살림을 꾸려가기 어렵다는 것을 10여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어 평신도들의 기도봉헌예물을 정기적으로 받는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수도원은 평신도들의 삶과 고통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어 기도생활이 깊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신자들 또한 수도원 방문을 통해 수도자들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 현존 체험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도자의 봉헌과 평신도의 봉헌의 형태는 확실히 다르며 또 달라야 하지만 수도자와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같은 피와 생명으로 연결되어 한몸을 이룹니다. 수도원의 시고와 노동의 균형을 잡는 데는 수도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세상 삶의 한복판에서 역경과 곤란 등에 직면하여 많은 평신도들은 자신의 기도의 미약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전쟁과 천재지변의 대재난 앞에서 기도할 말조차 잃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기도는 곧 세상을 위한 기도이며 일곱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듯 끊임없이 기도를 바치고자 일생을 헌신합니다. 수도자와 평신도가 만나 둘의 봉헌이 하나가 되어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분향으로 피어오르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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