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은 예수님이 그리스 사람 몇이 당신을 뵙고 싶어한다는 말을 제자들로부터 전해 듣고 하신 말씀 중의 하나이다. 이방인들인 이 사람들은 아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백성들이 그분에게 보여준 환호(바로 앞 대목 요한 12,12~19)에 강한 인상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진정 따르려거든 그들도 당신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결실을 맺는 밀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참조: 26절의 말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영광스럽게 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시간이 바로 당신의 구속사업을 완성하시는 시간이요(참조 19,30), 그렇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영광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그 죽음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아무런 고뇌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요한 복음도 예수님이 임박한 죽음 앞에서 고뇌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요한 복음도 예수님이 임박한 죽음 앞에서 고뇌하셨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하고 기원할까?』(12,27).
그러나 『고난의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는 이 생각은 성부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명과 뜻을 생각하면서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28절)라는 기도로 바뀐다(참조 마르 14,36).
오늘 복음에 나오는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고뇌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참조: 이번 주일의 제2독서인 히브리서에서는 예수께서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다』(5,7)라고까지 말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자」의 모습으로는 너무나 나약하다. 그런 모습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데 오히려 결정적으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분이 「부활하여 살아계시다」는 것을 체험한 초기 신앙인들과 그들이 그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더없이 큰 사랑을 본다. 인류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큰 위로를 받는다. 다른 한편 깊은 고뇌 가운데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시며 그분의 뜻을 찾으려고 애쓰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신자들에게 - 특히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듯한 일을 앞두고 극심한 고뇌에 휩싸이게 될 때에 - 큰 귀감이 된다.
벌써 사순 제5주일이다. 성주간이 이제 한 주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동안의 사순시기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점검해 볼 때이다. 점검의 기준으로 마침 오늘 복음에 나오는 「썩을 줄 아는 밀알」의 정신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 각자는 가정에서, 본당에서, 각 공동체에서 과연 예수님의 정신대로 「밀알이 썩듯」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살아왔는가? 아니면 사회의 전반적 풍조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심지어 가정에서마저) 조금도 양보하거나 손해보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자신이 남을 위해 「썩으려고」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밀알은 땅에 떨어져 땅 속에 묻혀 썩을 때에야,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하여 그 생명은 풍요롭게 계속된다. 그러나 썩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면, 한 알 그대로 남는다.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어 홀로 뒹굴다가 결국에는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지나가는 수레바퀴에 밟혀 으깨져 버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눈 앞의 자기이익에만 매달리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희생은 커녕 양보조차도 조금도 하지 않고 살려다보면(썩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보면), 결국 그런 인생에서 남는 것은 「공허함」뿐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인생만 공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세상마저 그만큼 삭막하게 만든다.
마침 요즈음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마치 나라 전체가 사활을 건 경쟁에 휩싸인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이야말로 나라 전체를 위하여 『땅에 떨어져 썩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자기 자신과 자기 지역, 자기 정당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다. 부디, 욕심장이들이 아니라, 식견이 넓고 봉사정신이 투철하며 사랑이 가득한 분들이 많이 당선되기를 고대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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